일본 금융당국이 ‘가상자산 자금세탁방지(AML)’의 실무 무게중심을 민간으로 옮기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거래 데이터와 기술 인프라를 쥔 테크·금융 기업이 규제 집행의 최전선에 설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일본 금융청(FSA)은 지난주 “향후 3개월간” 민간 기업의 크립토 AML 관련 실증사업(파일럿)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도쿄가 2028년까지 가상자산을 금융 시스템 ‘주류’로 완전 통합하겠다는 신호를 내보낸 가운데, 규제 설계는 정부가 맡고 ‘집행’은 민간이 수행하는 협업 모델을 시험하는 셈이다.
Aleksander Gora 테라노드 그룹(Teranode Group) 아이덴티티·디지털 신뢰 부문 책임자는 DL뉴스에 “전 세계적으로 민간 부문이 점점 AML의 운영을 수행하는 일관된 패턴이 나타나고 있다”며 “민간이 데이터·기술·거래 레이어를 소유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규제 프레임워크를 정의하겠지만, 실행은 거래에 가장 가까운 곳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실증사업에는 GMO코인, 비트뱅크(Bitbank) 등 일본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가 참여한다. 블록체인 분석 기업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 일본 지사도 이름을 올렸다. 전통 금융권에서도 라쿠텐의 크립토 부문, 노무라의 크립토 부문이 합류했고, 히타치도 프로젝트에 관심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일부 참여사는 신원 비공개를 요청해 금융청이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다.
금융청은 “이번 파일럿은 민간 기업을 위한 새로운 프레임워크의 ‘효과’와 ‘법적 적합성’을 테스트할 것”이라며 “기업들이 가상자산 관련 자금세탁방지 정보를 협업·공유할 수 있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참여 기업들은 금융청 산하 협력 조직과 함께 거래 모니터링과 AML 준수 방안을 점검한다. 대상에는 스테이블코인과 대체불가토큰(NFT) 거래도 포함된다. 스테이블코인이 송금·결제 영역으로 확산하고, NFT가 투기적 거래뿐 아니라 다양한 유통 채널을 갖춰가는 상황에서, 불법자금 유입 경로가 넓어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탈중앙 블록체인 마켓플레이스 바운드리스(Boundless) CEO이자 코인베이스 재팬(Coinbase Japan) 전 컴플라이언스 총괄인 Shiv Shankar는 “정부가 거대한 국가 운영 시스템을 구축하기보다, 기준을 정하고 민간이 이를 구현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며 “일본처럼 규제 당국이 비교적 신중하지만 기술 관점에서는 미래지향적인 곳에 이 모델이 잘 맞는다”고 평가했다.
이번 실증의 핵심은 ‘정보 공유’다. 한 참여자는 금융청이 “여러 가상자산 거래소와 스테이블코인 사업자들이 업종을 가로질러 ‘사기 의심 지갑 주소’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AML 조치의 정교함과 효율성을 검증하길 원한다”고 설명했다.
이 구조가 자리 잡으면 거래소가 의심 거래 정보를 은행과 공유하고, 은행도 역으로 거래소와 정보를 주고받는 양방향 감시 체계가 가능해진다. 일본이 가상자산 규제 완화와 함께 전통 금융과의 경계를 흐리려는 상황에서, 업권 간 협업 필요성은 더 커질 전망이다.
실제로 일본의 은행·증권사는 엔화 연동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가상자산 연계 금융 서비스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노무라는 유럽 기반 크립토 거래소의 일본 내 영업 인허가를 올해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졌고, 다이와증권그룹과 SMBC닛코증권도 유사한 행보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이번 민관 합동 AML 실증이 2028년 ‘크립토 주류화’ 구상의 안전판 역할을 할지 주목하고 있다. 규제의 목표가 단순 단속이 아니라, 금융권이 가상자산을 다루기 위한 ‘신뢰 인프라’를 만드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일본 금융청(FSA)이 크립토 자금세탁방지(AML)의 ‘집행’을 민간으로 옮기려는 흐름은, 가상자산이 제도권 금융과 결합하는 속도가 더 빨라진다는 신호입니다.
거래소·스테이블코인 사업자·은행·증권이 ‘사기 의심 지갑 주소’ 같은 정보를 공유하며 감시 체계를 촘촘히 만들수록, 시장은 단순한 가격 게임이 아니라 데이터·컴플라이언스·리스크 관리가 수익과 생존을 가르는 구조로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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