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광화문 또 낙서 피해…문화유산 보호 '구멍'

| 연합뉴스

경복궁 광화문 석축에 또다시 낙서 사건이 발생하면서, 국가 문화유산의 관리 실태에 대한 우려가 다시금 제기되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사건 당일인 2025년 8월 11일 오전, 현장에서 용의자를 즉시 붙잡아 경찰에 인계했고, 훼손된 석재의 복구 작업을 긴급 착수했다.

사건은 이날 오전 8시 10분경 서울 경복궁 광화문 인근에서 발생했다. 순찰 중이던 경복궁관리소 직원은 79세 남성 김모 씨가 광화문 석축의 무사석(홍예문 옆에 층층이 쌓는 네모 반듯한 돌)에 검은색 매직펜으로 글씨를 적는 현장을 목격했다. 김씨는 "국민과 세계인에 드리는 글"이라는 문구를 시작으로,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문장을 쓰던 중 발각됐다. 낙서 면적은 가로 약 1.7미터, 세로 0.3미터에 달해 피해 규모 역시 상당했다.

경복궁관리소는 즉각 조치를 취해 경찰에 신병을 넘겼고, 오전 중 광화문 앞에 가림막을 설치한 뒤 보존처리 전문가들을 투입해 낙서 제거 작업에 착수했다. 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 소속 전문가 5~6명이 현장에 투입됐으며, 표면에 스며든 낙서를 제거하기 위해 약품과 함께 고가의 레이저 장비도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하루 대여료가 상당한 레이저 기기까지 동원됐다는 점은 문화재 복원에 들어가는 인적·물적 비용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 같은 사건이 처음이 아니라는 데 있다. 경복궁은 2023년 말에도 10대 청소년이 ‘낙서를 하면 보상을 주겠다’는 말에 따라 스프레이로 영추문과 국립고궁박물관 쪽벽에 낙서를 해 사회적 비판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낙서를 사주한 30대 남성이 실형을 받고, 청소년 낙서범도 장기 2년, 단기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때 낙서를 지우는 데만 약 1억 3천1백만원의 비용이 들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에도 피해 위치가 광화문이라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광화문은 경복궁의 중심이자 대표 상징물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쳐 수차례 증축과 복원을 반복한 유서 깊은 구조물이다. 국가유산청은 낙서가 남은 석재의 조성 시기 등을 조사하고 있으며, 유사 사건 방지를 위해 야간 순찰 강화와 CCTV 확충 등의 대책을 이미 시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이른 아침 시간에 벌어진 이번 사건은 그런 대책들이 현장에서는 얼마나 실효성이 있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현행 ‘문화유산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문화재를 훼손하는 행위엔 원상복구 명령이 내려질 수 있으며, 관련 비용도 가해자에게 청구할 수 있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문화유산을 훼손하는 행위는 용납하지 않겠다”며 단호한 처벌 의지를 밝혔다.

이 같은 사례는 문화재 훼손을 단순한 기물 파손이 아닌, 역사와 정체성 손상으로 인식하는 성숙한 시민 의식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지속적인 교육, 감시 체계 보완이 절실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향후에도 경복궁을 비롯한 주요 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현장 대응력과 사전 예방 시스템을 강화하지 않으면 유사 사례는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