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 본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정부 주요 전산망이 마비되면서, 전국적으로 공공·금융·생활 서비스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졌다. 평소 온라인 기반 행정서비스에 의존해온 시민들은 갑작스러운 전산 중단으로 주말 일상에서 큰 혼란을 겪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26일 저녁, 정부 전산시스템을 운영하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 본원 전산실에서 무정전 전원장치용 리튬이온 배터리에 불이 나면서 벌어졌다. 이 사고로 행정안전부 등 정부 부처의 업무 시스템 647개가 동시에 멈췄다. 정부 전산망이 대규모로 마비된 전례가 거의 없던 상황이라 파장은 컸다. 주말 동안이라 단기 민원 처리 및 생활 서비스 의존도가 높았던 시민들 입장에서는 사실상 ‘디지털 블랙아웃’과 다름없는 셈이었다.
첫 번째로 큰 영향을 받은 분야는 신분 인증체계였다. 병원이나 여객터미널, 관공서 창구 등에서는 모바일 신분증이나 무인민원발급기를 통해 신원을 확인하는 경우가 많은데, 갑작스러운 시스템 장애로 인해 이런 방식들이 모두 중단됐다. 신분증을 집에 두고 온 시민들은 병원 진료나 여객선 탑승에 불편을 겪었고, 정부사이트에서의 서류 발급도 불가능해 부동산 계약 등 급한 용무를 보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이에 따라 해양교통안전공단은 여객선 이용자들에게 반드시 실물 신분증을 지참하라는 긴급 공지를 내기도 했다.
우체국을 통한 금융 거래와 물류 서비스도 멈춰 섰다. 인터넷 우체국의 마비로 모바일뱅킹, 카드 결제, 계좌이체가 모두 불능 상태에 빠졌으며, 일부 주민은 최근 지급된 민생회복지원금을 사용할 수 없었다. 특히 추석 연휴를 앞두고 택배 거래가 급증하는 시점에 우체국 배송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강원도 등지에서는 이미 선물용 한과 배송에 대해 배달 지연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지방자치단체 역시 이번 사태의 여파를 고스란히 받고 있다. 도청 홈페이지를 통한 여권 발급 예약이나 견학 신청 등 각종 행정 민원이 불가능한 상태며, 내부 결재 자료 공유나 공직자 이메일 수·발신에도 장애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문자메시지 발송 서버가 이번에 피해를 입은 관리원 내에 자리잡고 있어, 도민들을 대상으로 한 행정안내가 전면 중단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응급 구조 서비스에서도 기술적 장애는 이어지고 있다. 현재 음성통화 방식의 119 신고는 가능하지만, 문자나 영상, 웹페이지를 통한 다매체 신고는 불가능하다. 또한 GPS 기반의 신고자 위치 확인 기능이 작동하지 않고 있어, 위급 상황에서 신속한 대응에도 애로가 발생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기남부경찰청은 소방 당국과 협력해 전화번호 조회 등을 통해 신고자의 위치를 수작업으로 파악하는 조치를 병행하고 있다.
이번 사고는 정부 전산망의 집중 의존도가 얼마나 높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디지털 행정서비스 고도화가 급속히 진행된 가운데, 물리적 인프라에 대한 리스크 관리가 충분했는지에 대한 점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는 시스템 복구를 조속히 추진하고 있지만, 전산망 복구에 수일이 소요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어 추가 혼란이 예상된다. 이 같은 흐름은 정부 행정의 디지털 의존 구조와 분산 백업체계 구축 필요성에 대한 중장기적인 정책 논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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