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벤처 투자 시장에서는 소수의 거대 스타트업이 전체 자금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자금 흐름의 축이 완전히 이동하고 있다. 신생 기업에 소액을 분산 투자해 대박을 기대하던 전통적 방식에서, 이제는 이미 두각을 나타낸 유망 기업에 대규모 자금을 집중 투입하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의 대표 사례는 바로 올해 1분기에만 약 40억 달러(약 5조 7,600억 원)를 조달한 오픈AI(OpenAI)다. 이는 같은 기간 미국 전체 스타트업 투자액의 절반에 달하는 규모다.
크런치베이스 조사에 따르면 지난 3년 간 미국 내 스타트업 투자액 중 상위 10건의 메가 라운드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속적으로 상승해왔다. 특히 생성형 인공지능(AI)을 개발하는 대형 스타트업들이 대규모 펀딩의 주역으로 자리잡고 있다. 오픈AI는 물론 xAI, 앤트로픽(Anthropic)까지 포함해 AI 영역에 속한 기업들이 최근 최대 규모의 자금 유치를 이끌었다.
AI와 직접 연관은 없지만 연관 기술로 주목받는 웨이모(Waymo), 데이터브릭스(Databricks), 안듀릴(Anduril)도 메가 라운드에 이름을 올렸다. 반면 바이오나 헬스케어 분야의 스타트업은 이 같은 초대형 거래에서 거의 배제된 모습이다. 예외적으로 AI 기반 신약 개발 플랫폼 자이라(Xaira)가 작년 봄 10억 달러(약 1조 4,400억 원)를 모은 사례 정도만 눈에 띈다.
이러한 투자 집중 현상은 AI 산업 그 자체의 성장 뿐 아니라, 투자자들의 위험 회피 성향 변화도 반영한다. 초기 단계 스타트업은 성공 확률이 낮고 실질적인 수익 창출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 일정 규모 이상의 시장 입지가 입증된 기업은 상대적으로 실패 가능성이 낮고, 자금 회수 기대 또한 빠르다. 이런 이유로 최근 벤처 자금은 성장 궤도에 오른 스타트업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접근의 단점도 존재한다. 오픈AI의 경우, 현재 약 3,000억 달러(약 432조 원)에 달하는 마켓 밸류에이션은 삼성전자나 도요타, 맥도날드의 시가총액보다 더 높다. 향후 시장 기대를 못 따라갈 경우, 큰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고평가 논란 또한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오픈AI가 이미 산업과 소비자 일상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어, 이 같은 고밸류에이션이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결국 오늘날 벤처 자금의 흐름은 단순한 모험 자본에서 벗어나 효율성과 확실성을 중시하는 ‘실용주의 투자’로 깊이 이동하고 있는 중이다. 생성형 AI 붐과 함께 계속해서 초대형 자금이 소수 기업에 쏟아지는 이 기조는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