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바꾼 투자지도… '신원 인증'이 차세대 블루칩으로 급부상

| 김민준 기자

인공지능 시대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신원확인 기술’이 새로운 투자 블루칩으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몇 주 동안 미국에서만 수백억 원 규모의 시리즈 D 투자 유치와 함께, 눈 스캔을 활용한 생채인증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상용화되며 산업 전반에 파장이 일고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사례는 샌프란시스코 기반 스타트업 퍼소나(Persona)다. 이 회사는 신원 검증 솔루션을 개발하며 파운더스 펀드와 리빗 캐피털의 주도로 2억 달러(약 2,880억 원) 규모의 시리즈 D 투자를 유치했다. 퍼소나는 AI 기반의 봇 트래픽이 인간 활동을 앞서는 환경에서, 신뢰할 수 있는 디지털 신원 검증 기술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보다 앞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베자(Veza)도 신원 보안 혁신을 내세우며 1억 800만 달러(약 1,555억 원) 규모의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 베자의 기술 역시 AI 에이전트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설계됐다. 양사는 모두 인간 사용자와 AI가 유사해지는 인터넷 환경에서 *진짜 사람*을 가려낼 수 있는 역량이 경쟁력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 더해 월드(World), 일명 월드코인(Worldcoin)으로 알려졌던 이니셔티브가 미국 5개 주요 도시에서 눈동자 스캔을 통한 생체 인증 시스템을 공식 오픈했다. 오픈AI 최고경영자(CEO) 샘 알트만(Sam Altman)이 공동 창업자로 나선 이 프로젝트는 블록체인 기반의 인류 인증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현재까지 월드는 안드레센 호로위츠와 블록체인 캐피털 등으로부터 2억 4,400만 달러(약 3,513억 원)를 조달받았다.

이 같은 대규모 투자는 업계의 광범위한 확장도 반영한다. 신원 보안 전문기업 아우라(Aura)는 지난 3월 시리즈 G 라운드에서만 1억 4,000만 달러(약 2,016억 원)를 유치해 지금까지 총 투자금이 6억 6,000만 달러(약 9,504억 원)를 넘었다. 뉴저지에 본사를 둔 11년 차 기업 셈퍼리스(Semperis)는 지난해 1억 2,500만 달러(약 1,800억 원) 유치를 포함해 총 5억 달러(약 7,200억 원)가량의 자금을 확보했다.

초기 단계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은 스타트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딥페이크 탐지 기술을 제공하는 뉴욕의 리얼리티디펜더(Reality Defender)는 삼성넥스트 등 전략적 투자자들로부터 최근 투자를 유치하며 존재감을 키웠다. 한편, 상장사 중에서는 오크타(Okta)의 최근 6개월 주가가 50% 넘게 상승하며 시가총액 200억 달러(약 28조 8,000억 원)를 기록, 아이덴티티 보안 시장에 대한 투자자 관심을 반영했다. 사이버아크(CyberArk) 역시 최근 몸값이 170억 달러(약 24조 4,800억 원)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문기관의 분석도 긍정적이다. 아이덴티티 매니지먼트 인스티튜트(IMI)는 올해 신원 및 접근 권한 관리(IAM)에 대한 글로벌 지출이 240억 달러(약 34조 5,600억 원)를 돌파할 것으로 봤다. 이는 지난해 대비 약 13% 증가한 수치로, 원격·하이브리드 근무와 클라우드 서비스 확산, 그리고 생체 인증 기술의 도입 확대로 인한 수요 증가가 배경이다.

AI의 눈부신 성장도 시장 확대를 견인하고 있다. 퍼소나는 2030년이 되면 전체 온라인 트래픽의 90%가 봇 또는 AI 에이전트에 의해 생성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점점 더 인간과 유사한 콘텐츠를 자동 생성하거나 CAPTCHA를 우회하는 기능까지 갖춰, 인간과 비인간의 구별을 흐리게 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은 진짜 사람을 식별할 수 있는 기술의 중요성을 한층 더 부각시키고 있다.

결국 누가 사람인지, 누구의 데이터인지, 누가 시스템에 접근하는지 보장할 수 있는 기술이 디지털 세계의 새로운 인프라로 자리 잡는 중이다. 신원 보안은 단지 기술 영역을 넘어, AI 중심 사회에서의 신뢰 기반을 형성하는 핵심 자산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