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캐피털 업계가 스스로를 재정의하고 있다. 단순한 알고리즘 투자 시대를 지나, '에이전틱 AI(agentic AI)'의 시대가 열리면서 자율성과 사람 중심의 협업이 투자 결정의 핵심 척도로 떠오르고 있다. 유럽 시장만 해도 2025년 1~2월 동안 해당 기술 스타트업에 5억 4,800만 달러(약 7890억 원)의 자금이 몰리며 이 같은 흐름을 입증했다.
에이전틱 AI는 단순한 생성형 AI를 넘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능력을 갖춘 시스템을 지향한다. 이들은 기존 소프트웨어 도구와 결합되어 작업을 수행하고, 다른 에이전트나 인간과 협업하며, 스스로 학습해 성능을 향상시키는 구조다. 문제는 '아이디어'만으로는 자금을 못 끌어온다는 점이다. 투자자들이 주목하는 건 기술 구현력, 위험관리 시스템, 그리고 에이전틱 AI 인프라 구축 여부다.
핵심은 실제 비즈니스에 미친 정량적 효과다. 생산성이 얼마나 향상됐는지, 고객 경험은 어떻게 개선됐는지, 그것이 매출이나 기업가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구체적인 수치로 증명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의 구현을 넘어, 기업 운영에 AI가 어떻게 내재화됐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여기서 중요한 관건은 '데이터'다. 알고리즘이 아닌 데이터 인프라에 돈이 몰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글(GOOGL), 마이크로소프트(MSFT), 오픈AI(OpenAI) 등 주요 플레이어도 에이전틱 기능 구현을 위해 데이터 기반 기술환경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이 데이터 사일로, 편향된 입력값, 부정확한 레이블링 등의 문제로 고전하고 있다. 검증되지 않은 데이터 위에 구축한 AI는 결국 리스크로 되돌아온다.
따라서 스타트업은 자신들의 데이터가 정제되고 검증되었으며 강력한 거버넌스 체계 안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래야만 AI 결과 역시 신뢰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제대로 된 투자 심사를 통과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개입은 여전히 결정적이다. 아무리 자율성이 우수한 AI라도 인간의 통찰과 개입 없이 완결된 솔루션은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성과를 내는 기업들은 AI 모델의 출력을 검증하고, 업무 프로세스에 사람 중심의 설계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균형을 맞추고 있다. 특히 데이터 품질 검수, 보안 및 전략 설계 등에서는 인간의 전략적 판단이 회사의 안정성을 높이고 투자자 신뢰를 끌어내는 핵심 요소가 된다.
맥킨지와 BCG의 최근 보고에 따르면, 최상위 AI 도입 기업 대부분은 기술보다 '사람'과 '문화'를 먼저 정비한다. 이들이 따르는 10-20-70 원칙은 기술 투자가 전체의 10~20% 정도이고, 나머지는 조직 구조와 인재 확보, 문화 변화에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이는 AI의 실제 작동과 투자 타당성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현실적인 해법이다.
에이전틱 AI 기술을 도입하는 기업이라면 단순히 알고리즘을 개선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당 기술이 조직 내외부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인간과 AI의 협업 수준은 이미 스타트업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으며, 성공적인 투자 유치의 관문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