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파산 딛고 AI로 부활…데이비즈 브라이덜의 기적

| 김민준 기자

데이비즈 브라이덜(David’s Bridal)은 두 차례의 파산 이후에도 살아남기 위한 승부수를 던졌다. 전통적 오프라인 웨딩드레스 유통 기업이었던 이 회사는 이제 인공지능(AI)을 전면에 내세운 ***펄 플래너(Pearl Planner)*** 플랫폼을 통해 사업 전반을 재편하고 있다. 급격한 전자상거래 확산과 팬데믹 영향으로 미국 내 오프라인 매장 1만 5,000곳이 폐업 위기에 처한 가운데, 데이비즈 브라이덜은 AI를 핵심 전략으로 채택해 생존을 넘어 새로운 성장 전기를 모색하고 있다.

플로리다 델레이 비치의 한 매장. 신부 예비 고객이 65인치 터치스크린 앞에서 웨딩 이미지들을 꾸미고 있다. 이 시각, 백엔드에서는 AI가 선택 정보를 분석해 신부의 기호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해당 정보에 기반한 맞춤형 벤더 추천과 웨딩 계획 수립이 자동으로 이뤄진다. 300개가 넘는 할 일에 압도되는 신부들을 위해 AI가 일정을 최적화하고, 변경이 생기면 자동으로 조정해주는 기능까지 제공한다.

이 같은 비전을 구현하는 주역은 CEO 켈리 쿡(Kelly Cook)과 실리콘밸리 출신 대통령 엘리나 빌크(Elina Vilk)다. 25년간 페이팔과 메타 등에서 결제 및 디지털 기술을 다룬 그녀는 전통적인 소매 경험이 전무한 인물. 그렇기에 오히려 통념에서 자유로웠다. 빌크는 AI 기술 리더로 마이크 발(Mike Bal)을 영입했고, 그는 워드프레스닷컴 운영사인 오토매틱(Automattic) 등에서 AI 개발 경험을 쌓은 실력자다.

초기 기술개발은 제약투성이었다. AI 경험은 부족하고 예산도 넉넉하지 않았지만, 기존 웨딩 산업이 엑셀과 이메일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발은 기존의 검색 중심 AI엔진 대신, 데이터를 유기적 연결 구조로 관리하는 ‘지식 그래프(Knowledge Graph)’ 아키텍처를 설계했고, 이미지 분석 기반의 성향 파악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혁신을 이끌었다.

펄 플래너는 단순한 업무 자동화를 넘어, 신부의 감정적 공감까지 설계에 반영했다. 사용자 경험은 마치 ‘비주얼 퀴즈’를 푸는 듯한 형식으로, 드레스·장소·장식 이미지를 선택하면 그 취향이 백엔드에서는 정교한 JSON 형식으로 분석된다. 이 데이터는 개인화된 대시보드 구성부터 추천 콘텐츠 제안, 벤더 검색까지 연동돼 ‘진짜 원하는 결혼식’을 구현할 수 있도록 돕는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이 프로젝트가 단일 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빌크는 AI 전문가들을 각 부서에 분산 배치하고, 전체 조직이 기술 혁신의 주체가 되도록 시스템을 설계했다. 그 결과, 전체 인력을 늘리지 않고도 두 배의 기술 인력을 확보했고, 각 부서가 AI 전환을 주도적으로 수용하는 문화가 정착되기 시작했다.

비즈니스 구조도 완전히 바뀌었다. 펄 플래너는 데이비즈 브라이덜과는 별도의 수익단위이자, 하나의 스타트업처럼 운영된다. 플래너는 단순히 드레스를 파는 것이 아니라, 웨딩 플래너·사진사 등 제휴 벤더들이 구독비를 내고 플랫폼을 활용하도록 만든 수익모델을 채택했다. 월 20~300달러(약 2만 8,000~43만 원) 수준의 제휴비는 기존 소매보다 수익성이 좋고, 수익 변동성도 낮다.

AI 구축의 수익성과 효과성을 검증하기 위해 단계적 전략도 도입됐다. 마케팅에서는 이미지 리터칭 작업의 30%를 AI로 대체해 타당성을 입증한 뒤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식이다. 고객 서비스나 콘텐츠 자동화에서도 품질 저해 없이 일정 수준이 보장될 때까지는 전면 대체를 유보하고 있다.

현재 펄 플래너는 비공개 베타로 운영 중이며, 올여름 정식 출시가 예정되어 있다. 주요 제휴업체로는 구글, 마이레지스트리, 셔터플라이, 다이나닷, 그리고 미국 전역의 웨딩 업체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가을에는 프로 모델인 ‘펄 플래너 프로’도 도입해, 전문 웨딩 플래너 전용의 협업 도구로 확장할 계획이다. 발은 장기적으로 음성 기반 AI 인터페이스를 통해, 신부가 산책 중에도 웨딩 과제를 AI와 대화하며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 사례는 AI 기술을 단순히 도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기존 업의 본질을 재설계한 대표적 성공 모델로 평가받는다. 구체적으로는 제품 판매 중심에서 서비스 플랫폼 중심으로 전환한 비즈니스 모델, 오프라인 매장의 실제 데이터 활용 역량, 그리고 고객 감정에 집중한 기술 응용 방식이 변화의 핵심이었다. AI가 단지 효율 도구가 아니라, 감정과 공감까지 설계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한 것이다.

연이어 파산을 겪은 데이비즈 브라이덜의 변신은 미국 소매 산업에 AI를 통한 생존 전략이 무엇인지 묻고 있다. 기술 도입의 목적은 비용 절감이 아닌, 기업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하고 고객 경험을 재창조하는 데 있다는 것을 이 기업은 스스로 입증해 보이고 있다. 이는 AI 기술 적용에 고민하는 전통 소매업에도 새로운 방향성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