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반도체 전략 엇갈린 TSMC·삼성… 트럼프 관세 리스크에 속도전 가속

| 김민준 기자

대만의 반도체 제조 강자인 TSMC는 미국 애리조나 반도체 공장 투자 속도를 높이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고객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신규 반도체 공장의 가동 시점을 늦추고 있어, 양사의 미국 내 전략이 엇갈리는 양상이다. 이번 변화는 반도체 공급망 재편과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 기조 가능성에 대비한 움직임으로도 해석된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TSMC는 일본 가고시마현에 계획했던 팹(반도체 생산시설) 공사 속도를 조절하고, 해당 자원을 애리조나주 피닉스 인근 대규모 생산 허브로 집중 배치할 계획이다. 총 9개의 팹으로 구성될 이 생산단지는 완공 시점에 약 6,000명의 반도체 전문가를 채용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4나노미터 칩을 생산 중인 TSMC의 첫 번째 애리조나 공장은 2024년 말부터 가동에 들어갔으며, 2030년까지는 1.6나노 칩 생산이 가능한 차세대 공장도 가동될 예정이다.

현지 언론은 TSMC가 이 같은 전략 변경에 나선 배경 중 하나로,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가능성을 의식한 선제 대응을 들고 있다. 트럼프가 반도체 수입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음을 시사하면서, 미국 생산 확대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로 여겨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텍사스 테일러 지역에 건설 중인 170억 달러(약 24조 4,000억 원) 규모의 신규 팹 완공 시점을 당초 계획에서 2026년으로 2년가량 연기한 상태다. 니케이 아시아 보도에 따르면, 공사 진척도는 90% 이상에 이르렀지만 고객사 확보에 실패하면서 주요 장비 반입도 늦추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은 당초 4나노 공정을 적용해 칩을 생산할 예정이었으나, 2나노미터급 공정 도입을 위한 설비 변경 가능성도 검토 중이다.

삼성은 성명을 통해 "2026년까지 팹 완공 일정에 변동은 없다"고 밝혔지만, 초기 조기 가동이나 대규모 양산이 계획대로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업계는 현재 삼성 측이 시장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며 투자 시점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2나노 공정 채택 여부는 시간과 막대한 추가 자본 투입이 필요한 만큼 삼성의 투자 판단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TSMC와 삼성전자는 모두 올해 하반기부터 2나노미터 공정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두 회사가 채택한 '게이트 올 어라운드(GAA)' 트랜지스터 구조는 전력 손실을 줄이고 데이터 처리 효율을 향상시키는 최신 기술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 경쟁에서 차세대 주력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전략 변화는 미국 현지 제조 확대라는 공통된 방향 속에서도, 고객 수요 확보 여부와 확장 타이밍을 둘러싼 각 사의 신중한 계산이 반영된 결과다.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 출범할 경우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미국 내 제조 거점 확보는 전방 산업과의 연결성뿐만 아니라 지정학적 리스크 대응 차원에서도 핵심 과제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