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술이 패션 산업과 결합하면서 혁신의 물결이 거세게 일고 있다. 벤처캐피털 업계는 상대적으로 기술에 소극적이던 의류 산업 속에서 인공지능 기반 스타트업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그 투자 규모도 조금씩 확대되고 있다. 팬데믹 이후 위축됐던 벤처 투자 시장이 여전히 회복세를 타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패션과 AI가 접목된 신생 기업들은 지속적으로 자금을 끌어모으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이 분야의 연간 투자금액은 1억 달러(약 1,440억 원) 안팎에서 유지되고 있다. 특히 2022년에는 중국의 즈이 테크(Zhiyi Tech)가 단독으로 1억 달러(약 1,440억 원)를 유치하며 전체 시장을 견인했다. 이 회사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상의 트렌드를 분석하고 전자상거래 데이터를 종합해 브랜드가 바이럴 트렌드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대표적인 수요 예측 AI 기업으로 꼽힌다.
미국에서는 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한 피네스(Finesse)가 'AI 기반 패션 하우스'를 표방하며 화제를 모았다. 소셜미디어와 쇼핑 데이터, 머신러닝 분석으로 의류 디자인을 결정하고 제작하는 이 회사는 현재까지 약 4,500만 달러(약 648억 원)를 조달했다. “넷플릭스 모델을 입은 자라”라는 표현으로 요약되는 이들의 전략은 AI 활용을 통해 패션 업계에 만연한 과잉 생산과 낭비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디자인 분야에서도 생성형 AI 도구가 활발하게 도입되고 있다. 뉴욕의 라즈베리 AI(Raspberry AI)는 손그림을 사실적인 렌더링으로 전환하는 플랫폼을 개발해 안드리센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 주도로 2,400만 달러(약 346억 원)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LA의 AI.Fashion은 가상 촬영과 콘텐츠 제작을 지원하는 플랫폼을 개발해 자본을 유치했으며, 보석 디자인에 특화된 BLNG는 AI를 이용해 스케치나 텍스트만으로 3D 렌더링을 구현한다.
소비자 경험 측면에서도 AI는 큰 변화를 이끌고 있다. 주리 본스타인(Julie Bornstein)이 설립한 데이드림(Daydream)은 사용자별 취향에 맞춘 의류 추천 서비스를 제공하며 5,000만 달러(약 720억 원) 시드 투자를 받았다. 이와 더불어 상품 설명을 보다 소비자 친화적으로 바꾸는 릴리 AI(Lily AI)는 패션 플랫폼의 검색 기능과 개인화 경험을 개선하고 있다.
가상 피팅과 맞춤화도 주목받는 분야다. 샌프란시스코의 도지(Doji)는 아바타 기반 가상 피팅 서비스를 제공하며 1,400만 달러(약 202억 원)를 시드로 확보했다. 파리의 비주얼(Veesual)은 다양한 체형 모델을 생성해 보다 현실적인 쇼핑 환상을 제공한다. 뉴욕에 기반한 아이앰빅(IAMBIC)과 로스 오브 모션(Laws of Motion)은 AI 기반 정밀 사이징 기술을 앞세워 혁신적인 신발과 여성복을 선보이고 있다.
공급망 효율화와 지속가능성 개선을 위한 AI 활용도 확산되고 있다. 스마텍스(Smartex.ai)는 섬유 제조 공정에 비전 인식 AI를 도입해 결함을 실시간 감지하며, 런던의 마토하 인스트루먼테이션(Matoha Instrumentation)과 쿠퍼티노의 리파이버드(Refiberd)는 섬유 분류와 재활용을 위한 AI 솔루션을 구현하고 있다. 솔레나 머티리얼스(Solena Materials)는 인공지능으로 생분해 섬유의 단백질 서열을 설계, 미생물로부터 새로운 소재를 만드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스타트업 투자 시장에서 AI는 여전히 가장 뜨거운 키워드 가운데 하나다. 안정적 수익 창출과 확장성 확보가 어려운 패션 산업에서도 AI를 통한 효율화와 맞춤화는 상당한 변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앞으로도 AI와 패션의 교차점은 혁신을 이끄는 새로운 동력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