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 화상회의 넘어 'AI 업무 플랫폼' 선언… MS에 도전장

| 김민준 기자

코로나 팬데믹 동안 '화상회의의 대명사'로 떠오르며 대중에 각인된 줌(Zoom)이 팬데믹 이후 새로운 도약에 나서고 있다. 최근 개최한 연례 분석가 행사인 ‘퍼스펙티브(Perspectives)’에서 줌은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넘어 '업무 방식을 재정립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겠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그러나 시장은 여전히 회의적이며, 기업 가치를 팬데믹 이전 수준에 머무르게 하는 여러 도전 과제가 공존하고 있다.

에릭 위안(Eric Yuan) CEO는 이번 행사에서 “일이 깨졌다(Work is broken)”는 직설적인 어조로 키노트를 시작하며, 줌이 AI와 협업 솔루션을 통해 근본적 업무 방식의 난맥상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기업에서 직원들이 실제 업무보다는 다양한 IT 시스템과 애플리케이션을 오가며 ‘업무 중인 척’하는 데 40% 이상의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줌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 전술로 ‘AI 컴패니언’ 기능을 강조하고, 기존 메일, 문서, 채팅 기능을 데이터 통합의 관점에서 재정의하고 있다.

특히 문서와 이메일 플랫폼 ‘줌 닥스’, ‘줌 메일’을 선보인 배경에는 단순히 마이크로소프트(MSFT) 제품과 직접 경쟁하려는 것이 아니라, 방대한 협업 데이터를 한 곳에 통합해 AI 기반 자동화와 분석을 가능케 하려는 목적이 있다. 이는 MS 오피스처럼 애플리케이션마다 데이터가 흩어진 전통적인 구조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발상으로, 줌이 AI 시대를 겨냥해 선택한 차별화 전략이다.

산업 맞춤형 솔루션 개발도 눈에 띄는 진전이다. 헬스케어 등 현장 근로자 중심의 업무 환경에 맞춘 커뮤니케이션 도구 통합이 그 중 하나다. 줌은 이미 1,000개 이상의 외부 앱과 통합돼 있으며, 이를 통해 지식 근로자 외에도 40억 명에 달하는 전 세계 프론트라인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영상회의 서비스가 접근하기 어려웠던 니치 시장에 새로운 성장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전략적인 접근이다.

줌의 파트너 채널 전략도 완전히 새로워졌다. 과거 채널 파트너들과의 갈등으로 논란이 있었던 줌은 최근 채널 고문으로 HP, 시스코 등에서 경험을 쌓은 베테랑을 잇달아 영입하며 신뢰 회복에 집중하고 있다. 실제로 영업 프로세스 효율 개선과 딜 체결 속도 향상 등 가시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으며, 파트너들의 만족도 역시 높아졌다는 평가다.

하지만 가장 큰 시험대는 ‘비디오 회사’에서 ‘업무 플랫폼’으로의 정체성 전환이다. 기존 캠페인인 "Meet Happy" 이후 새로운 마케팅 슬로건을 고민 중인 줌은, 앞으로는 단순한 화상회의가 아니라 업무 자체를 바꾸는 플랫폼이라는 인식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시장 전문가인 제우스 케라발라(Zeus Kerravala)는 줌이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GOOGL)처럼 "업무를 복잡하게 만든 장본인들"을 더 공격적으로 비판하고 포지셔닝을 분명히 해야 새로운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물론 마이크로소프트의 아성에 도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과거 윈도우와 오피스 번들로 워드퍼펙트, cc:메일 같은 경쟁자를 밀어낸 전례가 있고, 지금도 문서와 메일에서의 시장 점유율은 절대적이다. 하지만 줌은 데이터 통합과 AI 기반 자동화이라는 시대의 무기를 앞세워 이 벽에 도전장을 던진 셈이다.

현재 줌은 약 80억 달러(약 11조 5,000억 원)의 현금을 보유 중이며, 이는 인수합병을 통한 전환 전략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는 주요 요인으로 평가된다. 팬데믹 특수 이후 정체돼 있던 줌의 주가와 상장사로서의 위상이 이번 비전 전환을 통해 반등할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