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와 AMD로부터 중국 판매 수익의 일부를 징수하는 조건으로 수출을 허가하면서, 미·중 간 기술 통제 정책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두 회사는 중국 매출의 15%를 미국 정부에 납부하기로 합의하고 수출 허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1일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자사의 H20 반도체 칩, AMD는 MI308 칩을 중국 시장에 판매하는 대가로, 해당 제품의 중국 내 매출 15%를 미국 정부에 지불하기로 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 기술의 해외 확산을 통제하는 동시에, 이를 통한 수익 확보 방안을 모색하는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미 상무부는 이 같은 방식으로 수익을 환수하는 방안을 처음으로 적용했다.
앞서 미국은 중국이 인공지능, 슈퍼컴퓨터 등 첨단 분야에서 군사적 활용 가능성이 높은 쪽으로 자국 기술을 도입하는 것을 우려해, 엔비디아 등 주요 반도체 업체에 고성능 칩 수출을 사실상 금지해 왔다. 특히 올해 4월, 엔비디아가 중국용으로 성능을 낮춰 개발한 H20 칩마저도 수출 허가를 받지 못하면서 기업의 불확실성이 커졌으나, 지난달부터 허가 발급이 재개되기 시작했다.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젠슨 황은 이번 결정 직전 트럼프 대통령과 회동해 수출 규제 완화를 논의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번 수출 허가 조건에 대해 미국 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비판도 나온다. 일부는 미국 정부가 국가안보 정책을 수익 확보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태도를 우려하고 있다. 과거 국가안보회의에서 중국 문제를 다뤘던 전문가 리자 토빈은 “지금 방식을 보면 다음엔 전투기 수출에도 수수료를 조건으로 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며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미국 내에서도 논란이 제기되는 가운데, 관련 기업의 입장은 신중한 모습이다. 엔비디아는 단지 “미국 정부 정책에 따른 수출 규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고 밝혔고, AMD는 공식 대응을 내놓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시장조사업체 번스타인은 규제 시행 이전 기준으로, 엔비디아가 중국 시장에서 약 1백50만 개의 H20 칩을 판매해 약 230억 달러(한화 약 32조 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이 같은 흐름은 향후에도 반도체 등 전략 기술 분야에서 수출 통제와 경제적 이익을 연계하려는 미국 정부의 정책 기조를 강화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특히 반도체 산업 내 공급망 재편과 맞물려, 기업들은 지정학적 리스크를 고려한 새로운 전략 수립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