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암·결장암 생존율 높인 'KRAS 백신'… 림프절 정조준해 면역폭발

| 연합뉴스

변이 유전자를 표적으로 하는 새로운 형태의 암 백신이 췌장암과 결장암 환자의 생존 기간을 상당히 늘리는 것으로 확인돼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백신은 기존 치료를 마친 환자에게 투여됐으며, 강력한 면역 반응을 이끌어내 암의 재발을 억제하는 효과가 확인됐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의과대학의 제브 웨인버그 교수 연구팀은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을 통해 림프절을 표적으로 한 암 백신 ‘ELI-002 2P’의 임상 1상 결과를 발표했다. 이 백신은 췌장암과 결장암의 주요 성장 동력으로 꼽히는 변이 KRAS 유전자(mKRAS)를 공격하도록 설계됐다. 임상시험은 기존 표준 치료(수술이나 항암요법)를 마쳤으나 혈액 내에 여전히 암의 흔적이 있는 환자 25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임상 결과, 백신을 투여한 환자들에게서 면역세포인 T세포 반응이 현저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환자의 68%에서 강한 T세포 반응이 유도됐으며, 특히 면역반응이 강했던 환자군은 연구 기간 동안 생존 기간과 암 재발 없이 생존한 기간이 중간값 기준에 도달하지 않을 만큼 연장됐다. 반면 반응이 약했던 집단에서는 전체 생존기간이 평균 15.98개월, 암 재발 없는 기간이 3.02개월로 나타났다. 면역 반응이 강했던 경우 사망 위험은 77%, 암 재발 위험은 88% 낮아졌다는 분석이다.

이번 암 백신은 기존의 개인 맞춤형 백신과 달리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즉시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제작 부담을 줄이면서도 효과적인 면역 반응을 유도할 수 있는 것이 장점으로 평가된다. 연구팀은 mKRAS 단백질에 특정 지질을 부착해 림프절로 향하는 ‘양친매성(친수성과 소수성을 동시에 가지는 성질)’ 구조를 구현, 면역세포가 집중된 림프절에서 작용하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접근 방식은 백신이 원래 목표 이외의 다른 암 관련 표적에 대해서도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면역확산’ 효과까지 확인된 점이 특징이다.

KRAS 유전자 돌연변이는 결장암 환자의 절반, 췌장암 환자의 90% 이상에서 발견되는 유전자 이상으로, 그간 치료가 어려운 표적 중 하나로 꼽혀왔다. 기존 치료법만으로는 암의 미세 잔류를 완전히 제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 같은 백신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연구팀은 현재 이 백신의 효능을 보다 정밀하게 확인하기 위한 임상 2상 무작위 시험도 진행 중이다. 향후 관건은 다양한 종양에서 이 같은 백신의 효과가 재현되는지, 그리고 실용화에 필요한 생산·운송 체계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갖춰질 수 있는지 여부다. 이 같은 림프절 표적 암 백신의 성과는 향후 유사한 플랫폼 기반의 백신 개발과 맞춤형 면역치료 시장의 확장 가능성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