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코(CSCO)가 인공지능 인프라 분야에서 거둔 대규모 수주가 호실적을 이끌며 한 해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AI 수요 확대에 힘입어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8% 증가한 147억 달러(약 21조 1,680억 원)를 기록했고, 순이익은 40억 달러(약 5조 7,600억 원)로 주당순이익 99센트를 기록하며 월가 기대치를 모두 뛰어넘었다.
척 로빈스(Chuck Robbins) 최고경영자에 따르면, 시스코가 받은 AI 인프라 주문 규모는 당초 기대치의 두 배로 늘어났으며, 전체 회계연도 기준 AI 수주 합계는 총 20억 달러(약 2조 8,800억 원)에 달했다. 이 같은 호성적에도 불구하고, 정규 거래 이후 주가는 소폭 하락하며 반응은 다소 엇갈렸다.
제품별로 보면, 네트워킹 부문이 12% 성장했고 시큐리티는 9%, 가시성 관련 솔루션은 4%, 협업 제품은 2% 늘었다. 특히 지난해 인수한 스플렁크(Splunk)의 매출은 14% 증가하며 보안 부문 실적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 다만 기존 보안 제품의 수요 부진이 전체 수익성을 제한하는 요인이 됐다. ZK 리서치의 수석 애널리스트 제우스 케라발라는 "신제품에 대한 성장세가 20%를 상회했다"며 "미 연방정부를 제외하면 다른 시장은 두 자릿수 성장을 나타냈다"고 분석했다.
총매출 대비 영업이익률은 68.4%로, 전년 대비 0.5%포인트 증가했다. 시스코는 주주 환원 측면에서도 모범적인 성과를 보였는데, 이번 분기 동안 29억 달러(약 4조 1,760억 원)를 자사주 매입 및 배당금으로 지급했고 연간 누적 환원 규모는 124억 달러(약 17조 8,500억 원)로 확대됐다.
향후 전망에서도 낙관적인 기조가 이어졌다. 시스코는 2026년 회계연도 1분기 매출로 146억 5,000만~148억 5,000만 달러(약 21조 900억~약 21조 3,840억 원) 구간을 제시하며 시장 전망치를 뛰어넘었고, 연간 주당순이익도 4.00~4.06달러로 4.02달러라는 컨센서스를 대체로 상회했다.
로빈스 CEO는 “AI가 네트워킹 전반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흐름이 아닌 구조적 전환”이라며, “에이전트 기반 AI 운영이 강화될수록 네트워크는 더 높은 처리량과 보안을 요구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자사 조사 결과, IT 네트워크 리더의 97%가 AI 도입을 위해 네트워크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AI 수요를 반영하듯 시스코의 클라우드 관련 수익도 연간 기준 49%가량 성장했다. 특히 웹스케일 고객 대상으로는 4분기 연속 세 자릿수 주문 증가가 지속됐다. 이는 시스코가 최근 선보인 Catalyst 9000 시리즈 스위치와 AI 추론용 장비에 최적화된 라우터, 무선 액세스 포인트 등의 수요 확산과 맞물려 있다.
업계 전문가들도 긍정적인 시선을 보이고 있다. “고성능 네트워킹은 그동안 시스코의 약점이었지만, 실리콘원(Silicon One) 칩 아키텍처의 성숙과 엔비디아(NVDA)와의 협력이 시너지를 확대시키고 있다”고 케라발라 애널리스트는 평가했다.
이외에도 시스코는 미중 무역 관세 이슈가 사업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밝혔으며, 일부 분야에서는 오히려 매출 확대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마크 패터슨은 다소 복잡한 관세 환경에도 불구하고 수요 흐름은 지속적으로 견조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번 분기 실적은 단지 수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글로벌 클라우드와 AI센터 투자 경쟁에서 시스코가 다시 주도권을 되찾고 있다는 방증이며, 차세대 네트워크와 보안 시장에서 '신뢰받는 파트너'로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방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