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보안 시장의 패러다임이 전환점을 맞고 있다. 2024년 말, 코히시티(Cohesity)가 베리타스(Veritas)의 엔터프라이즈 데이터 보호 사업 부문을 전격 인수하면서 AI를 활용한 사이버 회복력 시장에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고 있다. 이번 인수는 단순한 기업 결합을 넘어 보안 기술의 복잡성을 해소하고, AI 기반 통합 솔루션 제공을 가속화하겠다는 이 회사의 의지를 드러낸 조치로 평가된다.
코히시티는 이번 인수를 통해 전 세계 1만 2,000개 이상 고객사, 특히 글로벌 500대 기업의 약 70%를 아우르는 강력한 고객 기반을 확보하게 됐다. 여기에 연간 프로포마 매출 17억 달러(약 2조 4,480억 원)를 기록하며, 시장 점유율 기준 세계 최대 데이터 보호 소프트웨어 업체로 입지를 굳혔다. 기업 사이버 복원력을 위한 AI 기반 솔루션의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코히시티의 전략은 데이터 보안 시장 내 새로운 경쟁 구도를 촉발시키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AI 기술과의 결합이다. 코히시티는 이미 생성형 AI를 활용한 데이터 검색 도우미 '가이아(Gaia)'를 출시한 바 있으며, 베리타스와의 통합을 통해 해당 기술의 적용 범위를 전사적 데이터 소스로 확대했다. 이를 통해 고객사는 단순한 복구를 넘어 침해 사고에 대한 분석과 복원 가능성까지 확보할 수 있게 됐다. 회사 측은 연간 40억 달러(약 57조 6,000억 원)가 넘는 총주소시장(TAM)을 겨냥하고 있으며, 머신러닝 기반 고급 기능 개발에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코히시티의 이 같은 행보는 사이버 보안 업계의 고질적 문제였던 '벤더 난립(vendor sprawl)' 해소와도 맞물린다. 기존에는 각기 다른 보안 솔루션이 각기 제 기능을 수행해야 했으나, 이번 통합을 통해 단일 플랫폼 내에서 통합된 관리와 대응이 가능해졌다. 코히시티의 하이퍼컨버지드 소프트웨어 '데이터플랫폼'과 SaaS 관리툴 '헬리오스'는 온프레미스와 클라우드를 넘나드는 통합 대시보드를 제공하며 효율성과 복원력을 동시에 높이고 있다.
디지털 복원력 전략 수립을 강조하는 점도 두드러진다. 단순 백업 복구는 공격자의 침투 경로와 악성코드까지 되살릴 수 있다는 인식하에, 코히시티는 '디지털 점프백(digital jump bag)' 기능을 중심으로 클린룸 환경, 불변 저장소 등 복원 시 취약 요소를 봉쇄할 수 있는 보조 시스템을 마련했다. 여기에 주요 파트너사인 휴렛팩커드엔터프라이즈(HPE), 스플렁크, 지스케일러 등과의 협업을 통해 상호운용성과 지속 가능한 보안 생태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사이버 공격 방식이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는 가운데, 코히시티는 AI를 전면에 내세운 방어 전략을 전개 중이다. 특히 파트너사와의 협업을 통해 보안과 인프라 운영팀 간 긴밀한 데이터 공유 체계를 만들어가고 있으며, 가이아를 이용한 직관적인 보안 질의 및 통계 분석 기능도 성숙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코히시티의 기술 임원은 이를 두고 "AI를 활용한 데이터 대화"라고 표현하며, 이는 보안 영역에서의 새로운 사용자 경험 패러다임을 시사한다.
글로벌 보안 시장이 다시금 격변기에 접어든 지금, 코히시티의 전략적 합병은 단순히 규모의 경제를 추구한 거래에 그치지 않는다. AI 시대에 적합한 통합 보안 솔루션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업계 공감대 속에서, 이번 인수는 디지털 복원력의 정의 자체를 재정립하는 이정표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