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가 인공지능 반도체의 대중국 수출을 강력히 제한하려 하자, 관련 업계 1위 기업 엔비디아가 이를 저지하기 위해 강도 높은 로비 활동에 돌입했다.
최근 미 상원과 하원은 국방수권법(NDAA) 개정을 통해, 인공지능(AI) 기반 반도체를 비롯한 미국의 핵심 기술이 중국 기업에 판매되기 전 미국 내 우선 공급을 보장하는 제도를 마련하려 하고 있다. 이 법안을 주도하는 공화당 의원들은 이를 '아메리카 퍼스트 수정안'이라고 부르고 있다. 국내 기술이 경쟁국인 중국으로 이전되어 자국 안보와 기술우위에 위협이 된다는 점을 이유로 들고 있다.
이에 대해 엔비디아는 단순히 이해관계 차원이 아닌 다소 이례적으로 이념적 논쟁까지 가세한 공개 반발에 나섰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주요 인사들은 중국에 미국산 칩을 더욱 많이 팔아 중국 기업이 장기적으로 미국 기술에 의존하게 만드는 것이 미국의 전략적 우위를 유지하는 길이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경제적 교류를 줄이는 것보다 오히려 기술 의존을 심화시키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는 입장이다.
이번 사안은 기술 수출을 둘러싼 전통적인 경제 논리아 한국적 판단의 영역을 넘어, 'AI 파멸론'과 '가속주의'라는 상반된 이념 대립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파멸론은 인공지능이 인류에 치명적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 뿌리를 두고 있는 철학적 흐름으로, AI 규제를 강화하려는 근거로 자주 사용된다. 반면 ‘가속주의’는 경제적 성장과 기술 우위 유지를 위해 인공지능 개발을 더욱 촉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자신들의 H20 칩이 무기가 아닌 상업용 제품임을 강조하며, 지나치게 포괄적인 규제가 자칫 글로벌 기술 시장에서 미국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엔비디아의 이번 로비 행동은 통상 기업이 조용히 펼치는 일반적인 정책 대응과는 달리, 공개 성명과 이념적 공세를 병행하는 형태를 띠고 있어 이례적인 행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AI 관련 논쟁이 이제는 미국 정치권 중심부인 워싱턴까지 번지면서, 기술 산업에 대한 입법 방향에 적잖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분위기다.
이와 같은 흐름은 단순한 수출 규제를 넘어, 미국 내 기술 패권과 국가 안보 전략, 산업계의 글로벌 시장 주도권을 둘러싼 셈법이 복잡하게 얽힌 광범위한 정책 대결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향후 미 의회의 입법 결과에 따라 AI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과 미국 중심의 반도체 질서에도 적지 않은 파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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