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인수’라던 썬이 오라클 구했다… AI 클라우드 급성장의 숨은 열쇠

| 김민준 기자

오라클(ORCL)이 2009년 썬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를 인수했을 당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를 잘못된 결정으로 봤다. 당시 썬은 서버 사업의 쇠퇴와 함께 막대한 손실을 기록하고 있었고, 주요 기술인 솔라리스(Solaris)와 스팍(SPARC) 플랫폼도 리눅스와 x86 아키텍처에 밀리며 시장 지위를 잃고 있었다. 인수 직전 썬은 매달 약 1억 달러의 손실을 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이 딜이 오라클에게 ‘하드웨어 회사의 덫’이 아닌 '미래를 사들인 선택'이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그 당시 표면적으로는 하드웨어 회사로의 확장처럼 보였지만, 실상 이 인수는 오라클의 시스템 전문성 확보라는 전략적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썬이 보유했던 엔지니어링 기술과 시스템 통합 역량은 이후 오라클이 엑사데이터(Exadata) 같은 ‘엔지니어드 시스템(Engineered Systems)’을 구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엑사데이터는 원래 HP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제공되었으나, 썬 인수를 통해 오라클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직접 통제하는 환경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시스템 통합 역량은 클라우드로 전환을 시도하던 오라클에 날개를 달아줬다. 래리 엘리슨(Larry Ellison) 회장은 오픈월드 2008에서 클라우드를 ‘헛소리’라고 표현했지만, 이내 현실을 인식하고 전환에 나섰다. 특히 썬 인수 후 확보한 인프라 기술을 바탕으로, AWS와 마이크로소프트(MSFT)의 애저, 구글(GOOGL)의 클라우드에 맞서기 위해 클라우드 아키텍처를 완전히 재설계한 두 번째 세대(GEN2)로 진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GEN2는 고객 데이터와 오라클의 내부 제어 코드를 물리적으로 분리하고 완전한 테넌트 분리를 적용하며 보안과 성능을 크게 끌어올렸다.

이러한 실험의 성과는 최근 들어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2025년 9월 10일, 오라클은 AI 수요로 인해 클라우드 사업의 계약 잔존액(RPO)이 4배 이상 증가해 4550억 달러(약 656조 원)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주가도 36% 급등해 최근 26년 간 하루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눈에 띄는 점은 이 중 3000억 달러(약 432조 원)가 오픈AI의 스타게이트(Stargate) 프로젝트와 관련된 계약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오라클이 AI 기반 클라우드 인프라 시장에서 얼마나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됐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AI 슈퍼클러스터라는 독자 기술로, 엔비디아(NVDA) GPU를 13만 개 이상 연결한 사례는 경쟁사들이 따라올 수 없는 성능을 구현하는 데 성공한 대표적인 예다. 이 덕분에 오라클의 엑사데이터 클라우드도 급격히 확산되고 있으며, 멀티클라우드 환경에서도 오라클 데이터베이스가 AWS, 애저, 구글 클라우드에서 네이티브 서비스로 제공되며 1년 만에 15배 이상 성장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물론 이러한 고성장의 이면에는 구조적 리스크도 존재한다. 오라클은 클라우드 리전을 위한 부동산을 소유하지 않고, 주문이 들어오면 그에 맞춰 하드웨어를 구매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는 수요 기반 투자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는 시장 침체 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오픈AI와 같은 단일 대형 고객에 의존하는 구조는 장기적으로는 불안 요소로 지적된다.

결국 15년 전, 당시에는 적자에 허덕이던 서버 회사를 인수한 결정을 두고 비판이 쏟아졌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 결정이 오라클을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주요 클라우드 인프라 제공자로 변모시킨 전환점이었음이 명확해졌다. 썬 인수를 통해 확보한 시스템 역량이 오늘날 AI 시대의 OCI를 가능케 한 것이다. 오라클은 이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완벽한 조화를 바탕으로, AI 클라우드 경쟁의 선두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