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승자는? 다시 뜨는 '하드웨어 테크'의 반격

| 김민준 기자

소프트웨어가 주도하던 기술 투자 지형이 재편되고 있다. 한때 느리고 위험하다는 이유로 외면받던 하드웨어 기업들이 이제는 인공지능(AI) 시대의 ‘핵심 자산’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실행 속도가 빠른 소프트웨어와 달리, 하드웨어는 물리적 존재감을 바탕으로 높은 진입장벽과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동시에 제공하기 때문이다.

AI 기반 스마트시티 인프라를 구축하던 한 스타트업에 초기 자문을 맡았던 전문가 이타이 사기(Itay Sagie)는 “당시만 해도 투자자들이 하드웨어는 너무 무겁고 리스크가 크다는 이유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난 지금, 그 기업은 수십 개 미국 도시에 기술을 성공적으로 배포하며 수백 명의 직원을 거느리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한때 ‘부담’으로 취급됐던 하드웨어가 확고한 시장 지위를 공고히 하는 발판이 된 셈이다.

이러한 흐름은 테슬라(TSLA)와 엔비디아(NVDA) 같은 글로벌 기업에서도 반복된다. 이들 기업은 단순히 소프트웨어가 아닌, 고유한 하드웨어 역량을 바탕으로 산업을 선도하고 있다. 특히 엔비디아는 GPU라는 고도화된 하드웨어 기술을 독점하면서 AI 생태계 전체의 핵심 축으로 부상했다.

물리적 장비는 설치 후 대체하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공공 인프라에 직접 연결되는 특성상 기술을 교체하려면 정치적, 물류적, 재정적 비용이 모두 수반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강력한 진입장벽, 즉 ‘모트(moat)’를 형성한다. 반면, AI 코딩 도구나 오픈소스 프레임워크의 등장으로 소프트웨어 간 기술 격차는 급격히 줄어드는 중이다.

하드웨어 기업이 단순히 장비만 팔고 끝나는 시대도 지났다. 우수한 하드웨어 기업은 설치 이후에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기능 추가, 데이터 분석 도구 및 AI 기반 기능을 통합함으로써 지속적인 ‘업셀(upsell)’과 계약 갱신이 가능한 플랫폼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즉, 단단한 하드웨어가 현장 영업사원 역할까지 수행하며 반복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다.

물론 하드웨어 투자는 여전히 제조 지연, 공급망 리스크, 초기 자본집약 등 잠재적 단점이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글로벌 위탁생산망의 성숙, 프로토타입 비용의 하락, 반복 수익 기반의 SaaS형 비즈니스 구조 확산 등이 이런 단점을 상쇄하고 있다. 과거의 편견만으로 하드웨어 투자를 꺼리는 분위기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하드웨어는 기술 산업의 견고한 기반이다. 특정 기술이나 유행이 지나가도 원천 인프라를 통제하는 기업은 지속적으로 가치를 창출한다. 다가올 혁신의 중심에는 실리콘과 강철,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스마트한 소프트웨어가 어우러진 복합 생태계가 놓일 것이다. 지금이 바로 다음 ‘테크 자이언트’를 예측하고 준비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