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보안의 최전선은 언제나 불균형하다. 공격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취약점을 시험하며 빠르게 진화하는 반면, 방어자는 대응 매뉴얼에 의존하는 수동적인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 트윈은 이러한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예측 도구로 주목받고 있다. 실시간으로 학습하고 진화하는 가상 복제 시스템인 디지털 트윈은 기존의 수동적 대응 방식을 전환시키며 기업 보안 전략에서 핵심 기술로 부상하고 있다.
본래 제조업과 스마트 시티 등에서 활용되던 디지털 트윈 기술이 사이버보안 분야로 확산되며 방어의 방식을 바꾸고 있다. 디지털 트윈은 단순한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기업의 IT 생태계를 실시간으로 복제한 동적 시스템이다. 네트워크, 디바이스, 사용자 행위, 로그 기록 등 모든 구성 요소를 반영해 보안팀이 실제 환경과 유사한 조건에서 사이버 공격을 가상으로 시뮬레이션할 수 있게 해준다. 침투 테스트, 피싱 공격, 내부자 위협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현실처럼 실험하고, 취약성과 대응 전략을 미리 탐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전통적인 사고 이후 대응 방식을 넘어서, 공격 이전의 ‘시연’을 가능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제로데이 취약점이 실시간으로 퍼질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하고, 디지털 트윈 환경에 이를 적용함으로써 전파 경로를 미리 분석하고 방어 전략을 실험할 수 있다. 공격의 전개 양상을 예측하고 사전에 무력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방어 전략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전환시키는 방식이다.
일부 글로벌 기업은 이미 이 모델을 시범 도입 중이다. 지멘스는 디지털 트윈 기술을 통해 산업 제어 시스템의 사이버-물리 공격에 대한 복원력을 실험하고 있으며, 마이크로소프트(MSFT)는 복잡한 클라우드 환경의 취약점을 디지털 트윈 기반 아키텍처로 예측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스타트업은 AI 기반 공격 예측 기능을 접목해, 잠재적 위협의 성공 가능성을 확률 지도로 제공하는 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 트윈은 단순 대응이 아닌 공격 예측과 대응 훈련의 실험실로 작동하고 있다.
기술 도입에 따르는 도전도 존재한다. 디지털 트윈 구축은 대규모 데이터를 필요로 하며, 물리적 인프라와 클라우드, 모바일, 사물인터넷 등 이기종 시스템 간의 동기화가 요구된다. 이중 하나라도 실시간 반영에 실패하면 전체 예측력은 낮아진다. 또한 디지털 트윈 자체도 해킹의 표적이 될 수 있어, 본 시스템과 동일한 보안 수준의 보호가 필요하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현재로선 대기업 위주의 도입 대상이지만, 여타 보안 기술과 마찬가지로 향후 기술이 표준화되면 중소기업도 접근 가능해질 전망이다.
문화적인 변곡점도 필요하다. 디지털 트윈은 확정성이 아닌 확률 기반의 의사결정을 요구한다. 이에 따라 경영진은 실시간 사건이 아닌, ‘발생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근거로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한다. 이는 기존의 확정 보고 위주의 보안 체계와는 다소 괴리가 있으며, 새로운 리더십과 이해가 병행돼야 한다. 하지만 AI 기반 툴을 활용한 공격이 늘어나는 현실 속에서, 사후 대응에 묶여 있는 조직은 점점 더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디지털 트윈은 사이버 보안의 기능을 조직 중심 운영과 전략적 기획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기술이다. 단순한 방어 기술이 아닌, 전체 IT 인프라의 예측력을 높이는 시스템으로 산업 전반에 변화를 예고한다. 금융, 의료, 에너지 같은 임계 산업에서는 특히 파괴력이 크다. 공격자가 통제력을 확보하기 전에, 조직이 먼저 준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 트윈은 이제 사이버 방어의 신경망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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