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으로 만든 첫 양자컴퓨터… 퀀텀 모션, 상용화 레이스 앞서나

| 김민준 기자

런던에 본사를 둔 퀀텀 모션(Quantum Motion)이 상용 반도체 공정을 활용한 최초의 소자 기반 양자컴퓨터를 실현했다. 이 시스템은 영국의 국가 양자컴퓨팅 허브인 NQCC(National Quantum Computing Centre)에 설치되면서 양자컴퓨팅 산업의 실용화를 향한 의미 있는 전환점을 마련했다.

이번에 발표된 양자컴퓨터는 300mm 실리콘 웨이퍼를 활용한 대량 생산 가능 구조로, 기존 클래식 컴퓨팅 기기의 핵심을 이루는 CMOS 공정을 그대로 적용해 제작됐다. 컴퓨터 프로세서와 메모리, 센서 등에 널리 사용되는 이 공정은 산업계에서 검증된 확장성과 안정성 덕분에, 양자 기술의 상용화를 가속하는 주요 요소로 주목받고 있다.

제임스 팰리스-딤목(James Palles-Dimmock) 퀀텀 모션 CEO는 “이번 성과는 양자컴퓨팅의 실리콘 모멘트”라며 “전 세계에서 가장 확장성 높은 기술을 기반으로 대량 생산 가능한 양자컴퓨터를 구축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고 밝혔다.

이번 시스템은 데이터센터 환경에 최적화돼 설계되었으며, 19인치 표준 서버랙 3개 분량의 공간에 냉각장치 및 제어 전자 장비가 담기도록 구성됐다. 여기에 사용된 '타일 아키텍처'는 연산, 측정, 제어 기능을 하나의 칩에 반복적으로 인쇄할 수 있는 구조로, 향후 수백만 큐비트 수준까지 확장이 가능하다.

양자 컴퓨터의 연산의 기본 단위인 큐비트(qubit)는 고전 컴퓨터의 비트와 달리, 0과 1 외에도 두 상태가 중첩된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 이러한 양자 중첩성과 얽힘, 간섭 등의 특성 덕분에 양자컴퓨터는 기존 컴퓨터가 수개월, 수년에 걸쳐 수행하는 계산을 불과 수초 혹은 수분 내 처리할 수 있다. 이는 신약 개발, 물질과학, 금융모델링, 물류 등 다양한 산업에서 혁신적인 속도와 효율을 제공할 핵심 기술로 기대를 모은다.

영국 과학기술혁신부의 발란스 경(Lord Vallance)은 “퀀텀 모션의 새 시스템은 양자기술을 상업적 실현 단계로 한 걸음 더 진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에너지 효율 최적화와 더 빠른 의약품 개발 등 사회 전반의 혁신을 촉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도입 외에도 퀀텀 모션은 '실리콘 기반 양자 오차정정(Silicon Quantum Error Correction)' 프로젝트를 통해, 고신뢰성 양자 연산 실현을 위한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과의 협력을 통해 2035년까지 1조 회 이상의 오차수정 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 양자시스템 구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동종업계 내에서도 실리콘 기반 양자 연산 기술 개발은 활발히 진행 중이다. 핀란드의 세미콘(SemiQon)은 2024년 설계된 극저온 CMOS 트랜지스터를 바탕으로, 2025년에 양자점 큐비트의 양산성을 입증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제어 전자기기를 양자 시스템 내부 냉각기 속에 통합시키는 방식을 통해 회로 통합도를 크게 높이고 있다.

퀀텀 모션의 이번 발표는 기존 IT 인프라와의 호환성을 극대화한 접근으로, 그간 이론과 실험 단계에 머물던 양자기술이 상용화와 산업 확산의 경로에 접어드는 시점을 상징한다. 양자컴퓨팅이 단순한 연구 개발을 넘어 데이터센터와 기업 시스템에 바로 도입될 수 있는 단계로 다가서고 있다는 점에서 산업 전반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