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피차이도 H-1B 출신…트럼프 비자 수수료 100배 인상에 기술업계 '발등의 불'

| 연합뉴스

세계적인 기술기업을 이끄는 최고경영자들이 미국 H-1B 비자의 수혜자였음이 알려지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비자 정책 강화 움직임이 업계 전반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비자 수수료를 대폭 인상하겠다는 행정부 방침이 실리콘밸리 전체에 부담이 될 것이란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9월 23일 보도에서 세계 최고 부호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 등 현재 미국에 본사를 둔 주요 정보기술 기업의 수장 다수가 과거 H-1B 비자를 통해 미국에 체류했다고 전했다. 이 비자는 외국인 고급 기술인력에게 발급되는 비이민 전문직 비자로, 특히 IT·공학 분야에서 쓰임새가 크다.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H-1B 비자에 매기는 수수료를 기존 대비 100배 인상한 10만 달러(약 1억 4천만 원)로 제안한 점이다. 이는 현재 460달러 수준에서 갑작스럽게 인상된 것으로, 비용 증가가 기업들의 외국 인재 채용에 직접적인 제약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메타 같은 대형 기업뿐 아니라 스타트업들도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머스크는 과거 미국에 학생비자로 입국해 이후 H-1B 비자로 체류 자격을 바꾼 인물이다. 그는 이민 비자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 비자가 없었다면 테슬라와 스페이스X는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H-1B 제도는 미국에서 일하고자 하는 해외 인력에게 이미 중요한 유입 경로로 자리 잡아 왔다. 머스크뿐 아니라 인도 출신의 나델라와 피차이도 유사한 경로를 거쳐 미국 내 기술 기업에서 경력을 쌓고 CEO 자리까지 올랐다.

이처럼 H-1B 비자는 실리콘밸리를 구성하는 핵심 인재 유입의 통로 역할을 해 왔다. 업계 관계자들은 영주권이 발급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 상황에서, H-1B 비자가 사실상 유일한 인재 채용 수단이라며 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나델라는 과거 자신의 회고록에서 H-1B 비자 발급 경험을 ‘운 좋은 도박’이라 표현할 만큼 이 제도가 바꿔놓은 개인과 기업의 운명을 언급한 바 있다.

한편 H-1B 논란은 기술업계 CEO들뿐 아니라 미국 전역의 여러 다국적 대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엔비디아, 퀄컴, 인텔 같은 반도체 및 소프트웨어 기업들도 비자 제도로 혜택을 본 외국 출신 CEO들이 경영하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최근 “이민은 미국과 우리 회사를 위한 미래”라고 언급하며, 잘 짜인 이민정책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일부 고급기술직 종사자에 대해서는 예외 조항을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나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이와 같은 흐름은 향후 미국 대선 국면과 맞물려 이민정책 전반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며, 특히 글로벌 기술 인재의 미국행에 중요한 갈림길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