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돌풍에 밀린 바이오테크…美 벤처 투자 비중 20년래 최저

| 김민준 기자

미국 스타트업 투자 시장에서 한때 강세를 보였던 바이오테크 산업이 2025년 들어 급격한 위축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들어 지금까지 바이오테크 기업에 유입된 벤처 투자금은 166억 달러(약 23조 9,000억 원)로, 전체 스타트업 자금 조달의 8%에 불과하다. 이는 지난 20년 동안 기록된 가장 낮은 비중이며, 금액 기준으로도 급격한 하락세다.

팬데믹 기간을 포함한 과거 수년간 바이오테크는 전체 벤처 자금의 15~20%를 차지하며 인공지능(AI)과 함께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AI 열풍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대규모 투자가 AI 스타트업으로 몰리면서, 기존의 바이오테크 생태계는 자금 유치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약 900억 달러(약 129조 6,000억 원)가 북미 지역 AI 스타트업에 투입됐으며, 이 중 오픈AI(OpenAI)가 소프트뱅크 주도로 유치한 400억 달러(약 57조 6,000억 원)는 AI 시대의 자금 쏠림 현상을 상징한다.

바이오테크 IPO 시장도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해 현재까지 나스닥과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미국 바이오테크 및 의료기기 스타트업은 18개에 불과하다. 이는 2000년대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산업 전반의 성장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다.

펀딩 환경 악화의 원인에는 금융 시장의 구조적 변화 외에도 정치적 요인도 적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 행정부 시절 단행된 공공 연구 지원 예산 삭감, 식품의약국(FDA)과 보건 기구 전반에 대한 리더십 교체, 향후 약가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 등이 현재 시장의 불안 심리를 부추기고 있다. 이런 정책 변화는 민간 투자자층의 리스크 회피 성향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으며, 특히 의약품 승인과 보험 적용 여부와 관련된 정책 리스크는 바이오테크 스타트업의 성장 전략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초기 단계 자금 유치 역시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해 미국 바이오테크 스타트업들이 유치한 시드 및 초기 단계 투자는 82억 달러(약 11조 8,000억 원)에 그쳐, 최근 수년 중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향후 스케일업이 가능한 기업 파이프라인 자체가 얇아질 수 있다는 신호다.

다만 일부 대형 자금 유치는 주목할 만하다. 심혈관 치료제를 개발하는 카디건(Kardigan)이 2025년 초 3억 달러(약 4,320억 원)의 초기 투자금을 확보한 데 이어, 과학 기반 초지능 기술을 연구하는 리라 사이언스(Lila Sciences)가 이달 중 시리즈 A 라운드에서 2억 3,500만 달러(약 3,384억 원)를 유치하며 시장에 이름을 알렸다. 면역 치료제를 연구하는 디스패치 바이오(Dispatch Bio)도 2억 1,600만 달러(약 3,110억 원)를 확보했다.

후기 투자 라운드에서는 일론 머스크(Elon Musk)의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업 뉴럴링크(Neuralink)와 정신질환 치료제를 연구하는 맵라이트 테라퓨틱스(MapLight Therapeutics)가 대형 투자를 유치하며 주목받았다.

결과적으로 바이오테크 투자의 위축은 이 분야에 대한 신뢰 부족뿐 아니라, AI 중심 투자 흐름이라는 새로운 대세에 밀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스타트업 생태계를 주도하던 바이오테크의 존재감은 하락하고 있으며, 현재로서는 제너레이티브 AI와 같은 차세대 기술이 투자 시장을 단독으로 견인하고 있는 모양새다. 바이오테크가 다시 생명력을 되찾기 위해선 정책적 안정과 기술 상용화 성과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