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전산망 또 멈췄다…리튬이온 배터리 화재, '디지털 선진국'의 민낯

| 연합뉴스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가 다시금 발생하면서, 첨단 사회의 심장이라 불리는 전산망이 뜻하지 않게 마비되는 상황이 현실로 나타났다. 지난 9월 26일 국가 전산망을 담당하는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전산실에서 UPS(무정전 전원공급장치)용 배터리에서 화재가 발생해, 정부 주요 행정서비스가 일시에 중단됐다.

이번 사고는 지난 2022년 10월 발생했던 판교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와 유사한 양상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당시와 같이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시작된 화재가 설비 전반에 급속히 확산되며 기반 시스템을 마비시킨 것이다. 주민등록 시스템과 정부24, 우체국 등 수십여 개 공공 서비스가 정상 작동하지 못했고, 일선 공무원들은 전산 없이 수기 결재로 업무를 처리해야 했다. 그 결과 민원업무 처리는 마비됐고, 시민들은 서류 한 장을 발급받기 위해 긴 줄을 서야 하는 불편을 겪었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1991년 일본 소니가 상업화에 성공한 이후, 휴대용 전자기기는 물론 전기 승용차, 그리고 대형 데이터센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작고 가벼우며 에너지 밀도가 높은 점이 장점으로 꼽히지만, 내부 분리막이 손상되면 ‘열폭주’ 현상이 발생해 물리적 충격이나 과충전, 고온에 의해 순식간에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불이 붙은 뒤에는 일반적인 소화 방식으로는 진화가 어려운 특징을 가진다.

이런 한계가 극적으로 드러난 사례로는 2024년 6월 화성의 한 배터리 공장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가 있다. 당시 배터리 하나의 이상이 순식간에 공장 전체로 확산돼 총 23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해당 시설에서는 소방장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대피 경로조차 확보되어 있지 않았다. 이후 관련 기업 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는 등, 우리 사회는 배터리 관련 안전 문제에 대해 보다 엄격한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 국가 전산망 사고는 단순한 안전관리 부실을 넘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위험에 취약한 구조 위에 놓여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준다. 데이터센터와 같은 핵심 기반시설이 단일 장애 지점(Single Point of Failure)에 의해 쉽게 멈출 수 있는 구조라면, '디지털 선도국'을 지향하는 목표는 공허한 구호일 뿐이다.

향후 정부는 데이터센터의 물리적 분산 배치, 이중·삼중의 전원 및 저장 시스템 체계 마련, 인공지능 기반의 실시간 이상 감지 기술 확대 등의 조치를 통해 이러한 위험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전국 공공기관과 민간 전산시설에 사용 중인 유사한 리튬이온 배터리에 대한 전면적인 실태 점검이 시급하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기술적 문제를 넘어 국가 시스템의 근간을 다시 세우라는 경고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