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전산망 마비 부른 화재…정부 '재난복구 시스템' 도마 위

| 연합뉴스

정부가 행정 전산망의 재난 상황 대응 체계를 충분히 구축하지 못한 가운데, 최근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 본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행정 서비스가 사실상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클라우드 기반 재난복구 시스템 마련이 미흡했던 점이 도마에 오르며 정부의 정보 인프라 관리 능력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9월 26일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전산실에서 리튬이온배터리 관련 화재가 발생하면서 정부의 주민등록, 민원서류 발급 등 핵심 행정 서비스가 장시간 중단됐다. 이 과정에서 클라우드 재난복구(Disaster Recovery, 이하 DR)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거듭되는 전산망 장애에도 근본적인 시스템 보완 노력이 부족했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정부는 과거 유사 사태인 2022년 카카오 서버 장애나 2023년 행정 시스템 마비 사태 등을 겪고도 DR 체계 구축에 나서지 못했다. 국정자원관리원이 2024년 예산안에 클라우드 이중화를 위한 250억 원의 예산을 책정하긴 했지만, 이는 광범위한 클라우드 전환이 아닌 기본적인 서버 백업용 성격에 그쳤던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이 예산조차 일부만 사용되고 대부분은 반환돼, 행정안전부가 사실상 DR 시스템 구축에 소극적이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같은 소극적 대응의 배경에는 천문학적 예산 규모가 있다. 정부 전반의 전산망을 클라우드 기반 DR 체계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수천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정부 내부에서도 필요한 예산을 매년 편성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기류가 있었고, 국정자원관리원도 이번 화재 이전까지는 제한된 예산 안에서 최신 기술을 활용한 대체 방안을 고민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국정자원관리원은 지난해부터 ‘클라우드 다중지역 동시 가동 체계’ 구축을 위한 컨설팅 작업을 진행해 왔다. AWS 등 글로벌 클라우드 기업이 보유한 고속 이중화 기술을 참고하고, 지연 속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프트웨어 정의 네트워크(SDN), 고밀도 파장 분할 다중화(DWDM) 기술 등의 접목도 검토해 왔다. 특히 고주파 수신 감도가 뛰어난 네트워크 환경을 유지하려 공주 센터를 백업 장소로 활용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었으며, 실제 시범 사업에 착수하기 직전에 화재가 발생해 사업이 무산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 같은 흐름은 향후 정부의 디지털 전환 정책 방향에 중대한 전환점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모든 정부 서비스를 동시 이중화하는 것보다는, 민원이나 주민등록 등 위기 시 가장 큰 피해를 초래하는 핵심 서비스를 우선적으로 선택해 클라우드 DR 체계를 도입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가 이번 사고를 계기로 재난 대응 인프라의 체계적 개선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