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레브라스, 상장 돌연 철회…11억 달러 유치 후 '전략 수정' 신호?

| 김민준 기자

AI 반도체 유망주로 주목받아온 세레브라스 시스템즈(Cerebras Systems)가 IPO를 철회했다. 불과 며칠 전 11억 달러(약 1조 5,800억 원)의 자금을 유치한 직후에 나온 결정이라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회사 측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철회 신청서에서 "현재 시점에서는 상장을 진행할 계획이 없다"고 공식 밝혔다.

이 회사는 지난 9월 30일 시리즈 G 투자 라운드를 통해 기업가치를 81억 달러(약 11조 6,600억 원)로 평가받았으며, 피델리티와 아트레이디스 매니지먼트가 주요 투자자로 참여했다. 그로부터 불과 3일 뒤인 10월 3일, 세레브라스는 상장 신청을 자진 철회해 시장에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기업은 지난 2024년 9월, 엔비디아(NVDA)에 도전장을 던지는 비전과 함께 최초로 IPO를 신청한 바 있다.

세레브라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AI 트레이닝 전용 반도체를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사 기술은 기존 GPU보다 10배 이상 빠른 성능을 제공하며, 고객사로는 프랑스의 미스트랄AI와 미국 메이요 클리닉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상장 철회 사유로 특정 고객에 대한 과도한 매출 의존도가 지적되고 있다. 2023년과 2024년 상반기에만 약 80% 이상의 수익이 아부다비 국영 투자사 G42 계열사인 그룹42에서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세레브라스는 단순 시스템 판매에서 탈피해 자사 반도체 기반의 AI 클라우드 서비스로 사업모델 전환을 시도 중이다. 안드류 펠드먼 최고경영자(CEO)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기존 상장 설명서의 정보가 "현 시점에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AI 생태계가 급속히 진화하면서 사업 방향에 실질적인 조정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2016년 창업 이후 세레브라스는 누적 18억 달러(약 2조 5,900억 원)의 자금을 조달했으며, 이 중 2021년 11월에는 알파웨이브 벤처스로부터 2억 5,000만 달러(약 3,600억 원)의 투자를 받아 기업가치 40억 달러(약 5조 7,600억 원)를 기록한 바 있다. 기타 투자자로는 세쿼이아 캐피털, 벤치마크, 발로어 에쿼티 파트너스, 이클립스 벤처스, 코튜 등이 있다.

이번 IPO 철회가 일시적인 결정인지, 아니면 장기 전략 변화의 신호탄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상황이다. 단, AI 반도체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자신만의 길을 모색하는 세레브라스의 행보가 다시 한 번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