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글로벌 반도체 설계기업 암(Arm)의 영업 행위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불공정 거래 여부를 들여다보기 위해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 이번 조사는 미국 반도체 업체 퀄컴의 신고로 촉발된 것으로, 기술 접근 제한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최근 암 홀딩스의 한국 지사인 서울 사무소에 조사관을 보내 현장 점검에 나섰다. 공정위가 공식적으로 조사를 밝힌 건 아니지만, 이번 절차는 퀄컴이 지난 3월 공정위에 제기한 신고에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퀄컴은 문제가 되는 행위에 대해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등 전 세계 규제 당국에도 같은 내용으로 조사를 요청한 바 있다.
퀄컴의 주장은 암이 반도체 칩을 설계하기 위한 기술에 대한 접근권을 기업별로 제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암은 과거에는 칩 설계의 근간이 되는 반도체 아키텍처를 라이선스 형태로 제공해 여러 반도체 기업들이 이를 기반으로 칩을 설계할 수 있도록 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자사에서 직접 설계한 칩 디자인까지 판매하면서, 특정 이용 조건을 제한하는 행위가 업계 내 자유 경쟁을 훼손한다고 퀄컴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두 회사의 갈등은 단순한 사업 갈등을 넘어 소송전으로까지 확장됐다. 퀄컴은 지난 2021년 암의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던 반도체 설계 스타트업 ‘누비아’를 인수했는데, 이후 암은 라이선스 사용에 대해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미국 법원은 지난해 말 이 소송에서 퀄컴의 손을 들어주며, 암의 주장이 정당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향후 조사를 통해 암의 행위가 국내 공정거래법상 ‘부당한 거래거절’이나 ‘부당한 조건부 거래’에 해당한다고 판단될 경우, 공정위는 제재 조치를 내릴 수 있다. 다만 공정위는 현재 조사 중인 사항에 대해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공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 최종 결론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글로벌 반도체업체 간의 분쟁은 시장 지배력과 기술 패권을 둘러싼 경쟁이 규제의 영역으로 넘어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향후 조사 결과는 국내외에서 유사한 사례에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와 관계 당국 모두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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