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표적 기술 연구기관인 SRI 인터내셔널이 한국 기업과 협력해 보유 중인 첨단 기술 특허를 사업화하기 위한 투자 거점을 국내에 마련한다. 실리콘밸리를 기반으로 한 이 연구소가 공식적으로 해외에 진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SRI 인터내셔널은 1946년 스탠퍼드대학교 산하 연구기관으로 출범해, 이후 1970년 독립 비영리법인으로 전환된 미국의 유서 깊은 연구소다. 컴퓨터 마우스와 액정표시장치(LCD), 초기 인터넷 기술인 아파넷(ARPAnet) 등 다양한 혁신 기술의 발원지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인공지능 기반 음성인식 기술 ‘시리’, 수술로봇 ‘다빈치’ 등도 SRI에서 개발된 기술을 바탕으로 상용화된 대표 사례다.
이번 한국 진출은 민간 벤처펀드인 글로벌혁신연구소(GIL)와의 협력을 통해 추진된다. SRI는 이를 위해 한국을 첫 번째 해외 기술 상업화 허브로 삼고, 이후 일본과 싱가포르 등 아시아 주요 국가로 확장을 이어갈 계획이다. SRI 측은 이미 한국 대기업과 협력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만 밝혔지만, 구체적인 기업명은 공개하지 않았다.
SRI는 내부 조직인 ‘SRI 벤처스’를 통해 자사가 보유한 수백 건의 기술 특허(IP)를 기반으로 창업 초기 단계부터 기술 수준이 높은 스타트업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시리즈A 또는 시리즈B 단계 수준의 기술 역량을 갖춘 신생 기업을 발굴하고, 독립 회사로 육성하는 방식을 취한다. 기존과 달리 IP에서 발생한 수익은 다시 연구개발에 재투자되는 구조다.
이번 진출은 단순한 기술 판매가 아닌 고부가가치 지식재산을 활용한 창업 생태계 구축을 의미한다. SRI는 과거에도 2020년 한국의 과학기술원(KAIST)과 손잡고 클라우드 보안 플랫폼 ‘아큐녹스’를 설립한 경험이 있으며, 이 같은 협업 모델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 SRI 벤처스의 토드 스타비시 부사장은 다음 달 서울에서 열리는 산업통상자원부 주최 행사에서 한국 시장 비전에 대해 직접 발표할 예정이다.
이러한 흐름은 국내 기술 창업 생태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세계적 연구기관의 기술력과 국내 기업 자본·사용 시장의 결합은 고위험이지만 고수익을 노릴 수 있는 ‘딥테크(심층기술)’ 스타트업의 성장을 가속화할 가능성을 지닌다. 향후 한국이 아시아 내 첨단 기술 사업화의 거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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