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 아닌 동료로… AI 소프트웨어, 진짜 '디지털 직원'이 된다

| 김민준 기자

AI 시대가 소프트웨어 산업의 패러다임을 근본부터 뒤흔들고 있다. 사용자와의 직접적인 인터페이스를 가지는 애플리케이션의 시대가 끝나고, 에이전트 기반 소프트웨어 생태계(agentic ecosystem)로의 전환이 빠르게 진행 중이다. 이제 기업용 소프트웨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닌, 기업 구성원처럼 의사결정을 내리고 실시간으로 환경에 적응하는 지능형 협업 파트너로 진화하고 있다.

이미 다양한 기업들이 이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세일즈포스(CRM)는 전사적으로 '에이전트포스360(Agentforce 360)' 플랫폼을 중심으로 제품군을 재편하고 있고, 오라클(ORCL)은 600개 이상의 AI 에이전트를 퓨전 클라우드에 탑재했다. SAP 역시 전 세계 3만 4,000여 고객사에 AI 에이전트를 제공 중이다. 이들은 단순한 자동화 수준을 넘어 인간 사용자의 의도를 이해하고, 프로세스를 조율하며, 때론 자율적으로 업무를 추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차원이 아니다. 기존 프로그램의 버튼과 메뉴 중심의 조작 방식은 자연어 기반 대화형 인터페이스로 대체되고 있으며, AI 에이전트는 사용자 행동과 문맥에 따라 스스로 화면 구성과 정보를 최적화한다. 하이퍼 개인화(hyper-personalized)가 핵심 키워드로 부상한 셈이다. 이에 따라 같은 소프트웨어를 쓰더라도 개개인에게 최적화된 전혀 다른 화면이 제공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오라클의 페데리코 토레티는 “앞으로는 두 명의 직원이 동일한 소프트웨어를 전혀 다르게 경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조직의 브랜드 정체성과 정책 문의에 맞는 UI를 자동으로 조정하는 기술도 등장하고 있다. 퀄트릭스의 최고제품책임자(CPO) 제프 겔푸소는 “소프트웨어가 예측하고 적응하며 주도적으로 의사결정을 보조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술적으로도 시스템 구조 전반이 재편될 조짐이다. 단일 코드베이스 중심의 모놀리식 구조는 해체되고, AI 에이전트를 중심으로 다양한 마이크로서비스가 상호작용하는 ‘컴포저블 소프트웨어’로 재구성되는 추세다. IBM이 기증한 MCP, Agent2Agent Protocol과 같은 표준 프로토콜은 여러 에이전트 간 협업을 가능케 하는 기반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SW 기업 입장에서도 본질적인 변화가 요구된다. 사용자가 에이전트를 직접 정의하고, 조직의 업무에 맞춰 자동으로 프로세스가 조립되는 미래에서는 전통적인 스위트형 제품 구조나 SaaS 가격체계가 통하지 않는다. 세일즈포스는 이에 대응해 기능 단위 과금 방식인 플렉스 크레딧 체계를 도입하기도 했다. 곧 소프트웨어는 ‘기능’이 아닌 '성과(outcome)' 단위로 구매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물론 이 같은 변화가 장밋빛 전망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AI의 확률적 의사결정 체계(probalistic reasoning)는 회계나 규제를 중시하는 조직에서는 불확실성이라는 치명적 단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SAP의 아린 보믹은 “에이전트 활동에 대한 통제와 규정을 위한 새로운 형태의 '거버넌스 에이전트'가 필수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세일즈포스는 민감정보 보호와 자동화 통제, 감사 기능을 통합한 트러스트 레이어 기능도 제공 중이다.

IBM의 ‘인-컨텍스트 익스플레너빌리티 툴킷’은 AI 모델의 결정 과정을 수학적 근거와 함께 설명해주는 기능을 제공하며, 잘못된 판단을 막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는 마치 API가 과거에 보안·속도·유연성을 높이며 발전했던 과정을 그대로 따라가게 될 것이라 보고 있다.

결과적으로 핵심 시스템 자체가 대체되기보다는 소프트웨어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극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SAP의 보믹은 “앞으로는 어떤 앱에 있든, 단순히 AI에게 묻는 형태로 모든 업무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어떤 앱을 실행했는지조차 의식하지 않고 결과 중심의 상호작용만 하게 되는 시대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는 전망이다.

소프트웨어는 이제 코드가 아니라, 사용자 경험과 결과물 중심의 디지털 동료로 자리잡고 있다. 산업 전반에 걸쳐 그 영향력이 얼마나 증폭될지, 그리고 그 변화의 속도를 누구보다 빠르게 따라잡는 기업이 어떤 혜택을 누릴지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