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이 일본 히로시마에 차세대 인공지능(AI)용 메모리 반도체 생산 시설을 새롭게 짓기로 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또 하나의 중대한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1월 30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일본 혼슈 서부 히로시마현 공장 부지에 새로운 생산 건물을 짓고 고대역폭메모리(HBM) 양산에 나설 계획이다. 착공은 2026년 5월 예정이며, 실제 제품 출하는 2028년경으로 잡혀 있다. 총 투자금은 약 1조5천억 엔(한화 약 14조 원) 규모이며, 이 중 약 5천억 엔은 일본 정부가 보조금 형태로 지원할 예정이다.
HBM은 고성능 AI 반도체에 필수적인 첨단 메모리 기술로, 대규모 데이터 처리에서 빠른 속도와 안정성을 요구하는 차세대 데이터센터나 AI용 그래픽처리장치(GPU) 등에 주로 사용된다. 최근 AI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HBM 수요도 함께 급증하고 있으며, 이 시장에서 마이크론은 후발주자지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투자를 진행 중이다.
특히 이번 투자 결정은 마이크론이 기존 HBM 생산의 주축이었던 대만에서 일본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그 배경에는 미국과 중국 간 갈등 심화, 대만 해협 정세의 불안정성과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은 상대적으로 정치·안보 여건이 안정된 데다, 자국 내 반도체 산업 복원을 추진하면서 외국 자본의 유입에도 적극적이다.
마이크론은 올해 5월 히로시마 공장에서 초미세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처음으로 도입하며, 생산 역량 고도화에 본격 나서고 있다. 일본 언론은 이번 투자가 2019년 이후 히로시마 공장에서 이뤄지는 첫 대형 제조 설비 확충이며, 향후 세계 HBM 생산의 주요 거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이 시설은 관련 기술에서 우위를 가진 SK하이닉스를 추격하기 위한 시도로 해석된다.
일본 정부 역시 자국 내 반도체 공급망 재건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30회계연도까지 반도체 및 AI 산업에 총 10조 엔(약 94조 원) 이상을 투입해, 안정적 생산 기반을 마련하고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한 상태다.
이 같은 흐름은 주요 국가들이 반도체 자립과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전 세계적인 기술 주권 경쟁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주요 선진국들은 반도체 공급 안정성이 국가안보와 직결된다는 인식 아래 지원과 투자를 강화하고 있어, 향후 반도체 산업의 지형 변화는 더욱 뚜렷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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