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 스타트업에 11조 쏟아졌다… 'AI 전쟁' 투자 본격화

| 김민준 기자

세계 각국의 국방비 지출이 빠르게 증가하는 가운데, 스타트업들도 이 흐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며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 자금이 방위기술(Defense Tech) 산업으로 유입되고 있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군사 지출은 지난해 기준 9% 증가한 2조 7,000억 달러(약 3,888조 원)로, 30년 만에 가장 가파른 증가세를 기록했다. 이러한 흐름은 벤처 자금 동향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으며, 국방, 국가 안보, 법 집행 등의 분야를 아우르는 방위기술 스타트업들로의 투자가 올해 들어 사상 최고치를 돌파했다.

크런치베이스(Crunchbase)에 따르면, 2025년 들어 지금까지 글로벌 방위기술 스타트업에 유입된 자금은 총 77억 달러(약 1조 1,088억 원)로, 약 100건의 투자 라운드를 통해 집행됐다. 이는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이자 역대 최고 기록이다. 특히 올해 들어서만 2억 달러(약 2,880억 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한 스타트업이 10곳을 넘어서며, 대형 투자 유치가 전체 데이터를 견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가장 두드러진 사례는 앤두릴 인더스트리스(Anduril Industries)다. 캘리포니아 코스타메사에 본사를 둔 이 스타트업은 올 여름 시리즈 G 라운드를 통해 25억 달러(약 3조 6,000억 원)를 유치하며 회사 가치를 305억 달러(약 43조 9,200억 원)로 끌어올렸다. 이번 라운드는 실리콘밸리의 대표적 벤처캐피털 파운더스 펀드가 주도했다.

로스앤젤레스 기반의 카오스 인더스트리스(Chaos Industries)도 빠르게 주목받는 신흥 강자로 부상했다. 지난 6개월 간 2건의 대형 투자 라운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올해 5억 달러(약 7,200억 원) 규모의 시리즈 D 투자까지 유치했다. 2022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드론, 미사일, 항공기 등을 탐지하고 조기 경보할 수 있는 레이더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창업 3년만에 기업가치를 20억 달러(약 2조 8,800억 원)로 끌어올린 점도 주목된다.

이와 더불어 텍사스 오스틴에 본사를 둔 사로닉(Saronic)은 해군 및 해양 작전용 자율 수상함 개발에 주력하는 기업으로, 올해 초 6억 달러(약 8,640억 원) 규모의 시리즈 C 투자를 유치했다.

유럽에서도 방산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급증하는 추세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방위 예산 증가가 본격화되며 관련 스타트업들로의 투자가 연쇄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독일 뮌헨에 위치한 헬싱(Helsing)은 그 대표적 사례로, 올해 여름 시리즈 D 라운드를 통해 6억 9,400만 달러(약 9,993억 원)를 끌어모았다. 이 스타트업은 소프트웨어 기반의 현대 국방 혁신을 목표로 한다.

방산 산업의 전통적인 하드웨어 중심 모델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포인트72 벤처스(Point72 Ventures)는 올해 방위기술 산업 보고서에서 “AI, 자율 시스템, 소프트웨어 중심 기술이 향후 전쟁 양상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며, 기존의 수년 단위 개발 주기와 하드웨어 우선 전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크런치베이스는 “방위기술 스타트업 생태계는 아직 성장 초기 단계”라며 “현재의 투자 트렌드는 시작에 불과하며, 앞으로 훨씬 더 많은 자금이 이 분야로 유입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방위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단순한 ‘테마 접근’이 아닌, 새로운 전쟁 패러다임 속 상업적 기회를 인식한 결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