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기술 스타트업 '엑스라이트'에 2,200억 투자…EUV 레이저 국산화 시동

| 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서 주도권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민간 반도체 기술 스타트업에 대한 직접 투자에 나섰다. 미국 상무부는 12월 1일(현지시간), 첨단 반도체 공정에서 핵심 기술로 꼽히는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용 레이저를 개발 중인 스타트업 ‘엑스라이트(xLight)’에 대해 최대 1억5천만 달러(약 2천200억 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번 투자는 ‘칩스법(CHIPS Act)’에 따른 인센티브 방안 중 하나로, 미국이 반도체 산업 내 기술 자립도를 확보하고, 핵심 부품과 장비에서 해외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정책적 수단으로 해석된다. 칩스법은 지난 2022년 제정돼, 반도체 제조와 연구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총 527억 달러의 정부 보조금과 세금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법이다. 엑스라이트에 대한 투자는 이 법에 따라 진행되는 최초의 지분 인수 사례 중 하나로, 민간 스타트업에 대한 직접 투자라는 점에서 예외적으로 평가된다.

엑스라이트는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에 본사를 둔 기술 스타트업이다. 이 회사는 입자가속기 원리를 응용해 전력 소모를 크게 줄일 수 있는 ‘자유전자 레이저’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기존 레이저보다 효율이 월등하며, 향후 미국 국립 연구소와의 공동 개발을 통해 EUV 노광 장비에 탑재할 수 있는 시제품을 제작 중이다. 주목할 점은 현존하는 EUV 노광 장비가 사실상 네덜란드의 ASML사가 독점하고 있다는 점으로, 미국 정부는 이 같은 투자를 통해 자국 내 대체 기술 확보를 본격화할 태세다.

EUV 기술은 수십 나노미터 수준의 반도체 회로를 실리콘 기판에 정밀하게 새겨 넣는 데 반드시 필요한 장비 기술이다. 이 장비에서 가장 높은 기술력이 요구되는 부분이 바로 레이저 장치로, 미국이 엑스라이트에 투자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자체 기술로 EUV를 구현할 수 있을 경우 미국은 반도체 공급망의 상위 기술을 직접 통제하게 되며, 이는 중국과의 기술 경쟁뿐 아니라 한국, 대만 등 동맹국 내 공급망 재편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투자와 관련해 미국의 EUV 기술 의존이 지나치게 외부에 있었음을 지적하며, 더 이상 첨단 기술을 해외에 내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이러한 메시지는 단순한 산업 정책을 넘어 전략산업을 중심으로 한 국가 주도의 기술 안보 강화 기조를 반영하고 있다.

엑스라이트는 올해 3월, 인텔의 전 최고경영자 팻 겔싱어를 이사회 의장으로 영입하면서 기술력뿐 아니라 경영진 구성도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로써 미국 내 반도체 첨단 기술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이 명확해지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향후 미국 정부가 다른 민간 반도체 기술기업에 대해서도 직접 지분 투자를 확대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기술 자립과 공급망 확보라는 전략적 목표 아래, 미국은 민간과 공공의 경계를 넘나드는 유연한 개입 방식을 더욱 강화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