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술 기업들의 감원 행렬이 좀처럼 멈추지 않고 있다. 크런치베이스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올해 들어서만 12만 6,000명 이상의 미국 내 기술업계 근로자들이 대규모 구조조정의 직격탄을 맞았다. 인공지능(AI) 도입과 경기 둔화에 따른 구조조정이 합세하며 수만 명씩 직장을 잃는 집단 해고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이번 주 추가된 기업 중 가장 주목을 끈 주체는 PC 및 프린터 제조업체 HP이다. HP는 향후 AI 투자 재정비를 이유로 최대 6,000명의 인력을 순차적으로 감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르면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집행되는 이번 구조조정은 회사의 장기적인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결정이라고 CEO 엔리케 로레스는 설명했다.
뉴욕에 본사를 둔 광고 대기업 오므니컴 역시 90억 달러(약 12조 9,600억 원) 규모의 인터퍼블릭 인수와 동시에 직원 4,000여 명을 감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전체 인력의 약 3% 수준으로, 대다수 감원이 이달 안에 완료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원격 진료 서비스 업체 인바운드 헬스는 최근 자금 조달 실패와 규제 불확실성을 이유로 전 직원을 해고하고 사업을 전면 중단했다. 병원 대체형 방문 진료 시장의 유망주로 불렸던 해당 스타트업은 결국 시장 퇴장을 피하지 못했다.
올해 들어 크런치베이스 기술 감원 트래커에 새롭게 이름을 올린 기업은 7곳이다. HP 외에도 문화 조직 측정 플랫폼 컬쳐앰프, 기업용 식사 배달 서비스 이즈캐이터, 자율주행 전기 트랙터 업체 모나크 트랙터, 해운 데이터 소프트웨어 기업 베손 노티컬 등이 포함됐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감원 사태가 단기적 현상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비관론도 제기된다. 실제로 2022년 9만 3,000명, 2023년 약 19만 1,000명, 2024년 9만 5,000여 명이 해고된 데 이어 올해도 그 수치가 이미 이를 넘어섰다.
2025년 현재까지 가장 많은 인력을 줄인 회사는 인텔로, 무려 2만 7,100명의 역할을 없앴다. 그 뒤를 마이크로소프트(15,387명), 버라이즌(1만 5,000명), 아마존(1만 4,625명)이 잇고 있다.
기술 업계의 구조조정이 지속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팬데믹 이후 급격히 늘어난 고용이 정상화되며 과잉 인력을 정리하는 기업이 늘어난 데다, AI 도입이 인간 노동력을 대체하는 현상이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원격 근무가 축소되고, 중복 부서 통합, 실적 저조, 현금 확보 목적의 감원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구조조정이 더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벤처 투자 감소, IPO 시장 침체, 고금리 환경 등이 스타트업뿐 아니라 대형 기술 기업의 고용 전략에도 압박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직원들에게 전해지는 돌발성 사내 공지, 프로젝트 중단, 성과 재평가 등의 정황은 대부분 구조조정 전조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기술업계 고용 환경은 한동안 불확실성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AI와 기술 경쟁이 가속화되는 한편, 자금 부족과 수익성 악화는 구조조정을 되풀이하게 만들고 있다. 2025년은 ‘감원 정점’이라 불렸던 2023년에 비해 다소 삭감 폭은 줄었지만, 전반적인 업계 상황은 결코 녹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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