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자국 반도체 산업의 자립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새로운 조치를 단행했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자국 반도체 기업이 신규 팹을 설립하거나 기존 팹을 확장할 때 생산 장비의 절반 이상을 국산 장비로 구성해야 한다는 규정을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른바 ‘50% 규칙’으로 불리는 해당 조치는 올해 초부터 조용히 시행돼 왔으며, 중국이 반도체 생태계 전반에서 완전한 공급망 자립을 추구하는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과거 중국은 외산 장비와 부품에 상당 부분 의존해왔으나,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로 인해 핵심 기술 확보가 시급해졌다.
수출 제재 이후, 미국 장비와 장비 소프트웨어에 의존하던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점차 국내 공급사와의 협업을 확대하고 있다. 규정을 통과하지 못하면 보조금이나 인허가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실질적으로 국내 장비 업체의 참여가 필수가 된 셈이다.
다만, 최첨단 노드에서 요구되는 특정 장비는 아직 국산화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은 만큼 예외가 인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예외는 소수에 불과하며, 중국 정부는 장기적으로 외국 장비에 대한 의존에서 완전히 벗어나겠다는 목표를 고수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중국의 이러한 자국 중심 전략이 단기적으로는 효율성 저하를 동반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자립 기반 확대에 효과적일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시진핑 주석은 반도체 수출 통제로 인한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고 있으며, 단순한 장비 조달을 넘어 소재, 소프트웨어, 아키텍처 전반에서 자체 기술을 구축하라는 지시를 내려왔다.
이에 따라 지난 2024년부터 3440억 위안(약 49조 원)이 투입된 이른바 ‘빅펀드’의 세 번째 단계가 본격 가동되었고, 이를 통해 국내 반도체 스타트업과 연구기관에 대한 지원이 확대되고 있다.
특히, AMSL 등 글로벌 장비 업체 출신 중국계 엔지니어들이 귀국해 기술 개발에 참여하면서, SMIC는 극자외선 리소그래피(EUV) 장비의 시제품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EUV 기술은 고성능 반도체 양산에 필수적이지만, 해당 장비는 AMSL이 독점 제조하고 있으며 중국 수출은 금지돼 있다. 그러나 SMIC가 이를 역설계해 프로토타입을 제작, 늦어도 2030년까지는 대량 생산 준비를 마치겠다는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수출 제한이 중국 기술의 발전을 더 가속화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한 전직 나우라테크놀로지(Naura Technology) 직원은 “2024년 제재 전까지는 외국 장비가 우선이었지만, 지금은 국산 장비 시험과 채택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변화의 속도를 전했다.
나우라는 현재 SMIC의 7나노 공정에도 에칭 장비를 시험 적용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장비는 14나노 공정에서는 이미 성공적으로 도입된 바 있으며, 당국의 ‘50% 규칙’이 장비의 상용화 속도를 끌어올린 주요 동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처럼 중국은 반도체 산업의 전 주기를 국산화하고자 관련 기술과 인력을 총동원하고 있다. 미국의 제재는 단기적으로는 타격을 입혔지만, 결과적으로 중국 반도체 생태계를 내재화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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