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로벤처스, AI 전선 확장…30억달러로 50년 만의 최대 펀드

| 유서연 기자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 멘로벤처스가 인공지능(AI) 시장 전반에 투자하기 위해 30억달러, 원화 약 4조2849억원 규모의 신규 자금을 조성했다. 창립 50년 역사상 최대 규모다. 초기 스타트업부터 후기 성장 단계까지 한 번에 지원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면서, AI 투자 전선에서 존재감을 한층 키우는 모습이다.

멘로벤처스는 지난 6월 두 개의 신규 펀드를 발표했다. ‘멘로벤처스 XVII’는 주로 시드와 시리즈A 단계 기업에 투자하고, ‘멘로 인플렉션 IV’는 시리즈B 이후 성장 자금을 담당한다. 투자 대상은 기초모델, 인프라, 기업용 소프트웨어, 헬스케어, 소비자 서비스 등 AI 생태계 전반이다.

이번 자금 조성은 AI 기업이 과거 소프트웨어 스타트업보다 훨씬 많은 자본을 필요로 한다는 시장 변화를 반영한다. 특히 유망 기업이 더 오랜 기간 비상장 상태를 유지하고, 선두 기업이 빠르게 시장을 장악하는 흐름이 강해지면서 벤처캐피털도 더 큰 규모의 후속 투자를 감당해야 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멘로벤처스의 대표 사례는 앤트로픽이다. 이 회사는 2023년 처음 앤트로픽에 투자한 뒤 후속 라운드에서도 지분을 늘렸다. 현재 포트폴리오에는 러버블, 수노, 오픈라우터, 위스프르, 파이어웍스 AI, 모달, 스킬드 AI, 굿파이어 등도 포함돼 있다. AI 투자 축이 더욱 뚜렷해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 전략의 중심에는 2015년 멘로벤처스에 합류한 매트 머피가 있다. 그는 AI 인프라, 개발자 도구, AI 네이티브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투자해 왔으며, 앤트로픽과 러버블, 오픈라우터는 물론 하니스, 셈그렙, 레고라 등 주요 딜을 이끌었다. 머피는 크런치베이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AI 기업은 이전 세대 소프트웨어 기업보다 훨씬 더 많은 자본이 필요하다”며 “대형 펀드는 창업 초기부터 ‘하이퍼성장’ 단계까지 창업자와 함께할 수 있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후기 AI 투자 시장이 사실상 ‘골드러시’ 국면에 들어섰다고 진단했다. 소수의 선도 기업은 과거에 보기 어려웠던 속도로 성장하고 있고, 그만큼 높은 기업가치와 대규모 자금 수요가 동시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멘로벤처스도 이에 맞춰 투자 전략을 바꾸고 있다. 초기 단계 투자는 유지하되, 확실한 승자가 보이면 훨씬 공격적으로 큰 금액을 집행하는 ‘바벨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모든 AI 분야가 매력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머피는 “많은 AI 카테고리가 이미 과잉 투자 상태이고 투기적 성격도 강하다”고 짚었다. 결국 빠르게 차별화에 성공한 기업만 장기 복리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는 시각이다.

현재 AI 시장은 1단계에서 2단계로 넘어가는 중이라는 분석도 눈에 띈다. 초기에는 개발자들이 어떤 모델을 쓸지 선택하는 단계였다면, 이제는 실제로 서비스를 확장한 기업들이 비용과 인프라를 최적화하는 단계에 진입했다는 의미다. 그는 앞으로 AI 시장이 단일 모델 중심이 아니라 ‘멀티모델’ 구조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하나의 모델이 모든 산업과 용도를 충족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업들은 목적에 따라 서로 다른 모델과 인프라를 조합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인프라 분야의 기회가 특히 크다는 진단도 나왔다. 기업들이 멀티모델 전략을 채택하면서 컴퓨팅 자원, 학습 환경, 샌드박스, 런타임 운영 역량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달과 파이어웍스 AI 같은 기업이 주목받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동시에 AI 코딩 도구가 빠르게 대중화하면서 코드 검토, 배포, 보안, 테스트를 지원하는 하니스, 셈그렙, 그렙타일 같은 영역에도 강한 수요가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머피는 현재 대다수 AI 기업이 수익성보다 시장점유율 확대를 우선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며 마진 개선 여지가 충분하고, 지금은 드문 ‘땅따먹기’ 구간에 가깝다고 봤다. 다시 말해, 단기 수익보다 시장 선점이 더 중요한 시기라는 것이다.

초기 AI 연구팀에 대한 투자 기준도 공개했다. 멘로벤처스는 아직 제품이 없는 연구 조직에도 자금을 투입하지만, 처음부터 대규모 베팅을 하기보다는 소규모로 폭넓게 투자한 뒤 성과가 입증된 곳에 추가 자금을 집중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머피는 현재 시장에 약 60개 안팎의 모델 기업이 존재한다고 보고 있으며, 이들 가운데 상위권 몇 곳에 이미 투자했고 향후 1~2곳에 더 강하게 베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30억달러 조성은 단순한 펀드 확대를 넘어, AI 시장의 투자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초기 발굴 능력만으로는 부족하고, 승자가 드러난 뒤 수억달러 단위로 밀어붙일 수 있는 자금력과 인내심이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AI 시장이 성숙 단계로 접어들수록, 벤처캐피털의 역할 역시 ‘초기 후원자’에서 ‘장기 자본 파트너’로 빠르게 진화하는 흐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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