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큰화 펀드가 기관 투자자에게 제공할 가장 큰 가치는 ‘24시간 유동성’이 아닌 ‘대차대조표 관리’에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글로벌 금융사들이 직면한 현금 운용 문제를 해결할 실질적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도쿄에서 열린 웹엑스(WebX) 행사에서 피델리티 인터내셔널 아시아태평양(APAC) 디지털 자산 전략가 라이(Lai)는 “시간이 지날수록 토큰화 펀드의 핵심 활용처는 유동성보다 ‘대차대조표 관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기관들이 전 세계 여러 은행 계좌에 현금을 분산 보유해야 하는 구조적 현실을 짚었다.
글로벌 기업과 기관은 규제 대응, 환율 리스크 관리, 즉시 지급 능력 확보 등을 위해 다수 국가에 현금을 나눠 보관한다. 그러나 상당수 예금은 이자를 거의 얻지 못하고, 국가 간 자금 이동 역시 신속하지 않아 운용 효율이 떨어진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시간 지연이 핵심 문제로 지적된다.
라이는 이런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대안으로 ‘토큰화 자산’을 제시했다. 블록체인 기반으로 발행되는 토큰화 자산은 24시간 이동이 가능하고, 실시간 수익 창출이 가능하며, 다양한 유동성 수요와 통합될 수 있는 특징을 갖는다.
그는 “기업들이 여러 은행 계좌 간 유동성을 이동해야 할 때, 24시간 작동하는 토큰화 상품을 활용하면 훨씬 효율적인 대차대조표 관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기존 금융 시스템을 전면 교체하지 않고도 자본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현재 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 중인 분야는 ‘토큰화 머니마켓펀드’다. 이 상품은 주로 미국 국채를 기초자산으로 하며, 블랙록의 USD 기관용 디지털 유동성 펀드(BUIDL)가 대표적이다. 해당 상품은 2024년 3월 출시 이후 빠르게 자산을 끌어모았다.
토큰화 머니마켓펀드를 포함한 시장 규모는 현재 총운용자산(AUM) 기준 150억 달러(약 22조 원)를 넘어섰다. 스테이블코인을 제외한 온체인 실물자산(RWA) 시장은 310억 달러(약 46조 원)를 상회한다.
더 넓은 범위에서 대체투자 및 금융 인프라까지 포함하면 글로벌 자산 토큰화 시장은 약 2조1000억 달러(약 3125조 원) 규모로 평가된다. 시장조사업체 그랜드뷰리서치는 해당 시장이 2033년 24조5000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일부 업계에서는 2035년 최대 88조 달러에 이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토큰화 자산의 기술적 장점은 분명하다. 거래는 24시간 즉시 실행되며, 자산을 쪼개 소액 단위로도 투자할 수 있다. 매수·매도·결제까지 모든 과정이 실시간으로 완료되는 구조다.
그러나 기관 투자자의 관심은 ‘거래 편의성’에만 있지 않다. 라이는 “기관은 토큰 자체보다, 기존 금융 상품 대비 무엇이 더 가능한지를 본다”고 말했다. 즉, 비용 절감과 속도 개선을 통한 자산 운용 효율이 핵심이라는 의미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토큰화 머니마켓펀드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국채 운용 기관, 디파이 플랫폼 등에서 빠르게 채택되고 있다. 상시 수익과 담보 이동성이 필요한 구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다만 완전한 대차대조표 관리 도구로 자리 잡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전망이다. 라이는 “ETF 산업도 완전한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20년이 걸렸다”며 “토큰화 시장 역시 유사한 발전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토큰화 자산의 본질적 가치는 ‘거래 혁신’보다 ‘자산 운용 방식의 변화’에 있다는 분석이다. 기관 중심의 수요가 본격화될 경우, 금융 시장의 구조 자체를 바꿀 잠재력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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