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선택할 화폐는 무엇인가…하이에크·사토시·AI가 만든 ‘화폐 탈국가화’ 시나리오

| 토큰포스트

AI 에이전트가 경제 활동의 주요 참여자로 등장하면 화폐 선택 기준 역시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기계는 정치나 브랜드가 아니라 예측 가능한 규칙과 검열 저항성 같은 인프라적 속성을 기준으로 화폐를 선택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11일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실비아 토(Sylvia To) 불리시 캐피털 매니지먼트 부사장은 하이에크의 화폐 이론, 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의 설계, 그리고 인공지능 에이전트 경제가 결합되면서 ‘화폐의 탈국가화(denationalization)’가 현실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먼저 암호화폐가 등장한 철학적 배경을 짚었다. 밈코인과 NFT 같은 화려한 트렌드에 가려져 있지만 암호화폐의 본래 정신은 프라이버시, 탈중앙화, 검열 저항성이라는 ‘사이퍼펑크(cypherpunk)’ 가치에 있다는 설명이다. 이 철학은 중앙은행이나 정책 당국이 만든 것이 아니라 기술적 구조 자체로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사고에서 출발했다.

최근 비탈릭 부테린 이더리움 공동 창업자 역시 이러한 방향을 강조했다. 그는 2026년 3월 X(옛 트위터) 게시글에서 소유자가 없는 공유 디지털 공간을 만들고 권력이 이를 무기로 활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성역 기술(sanctuary technologies)’ 구축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러한 관점은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화폐 이론과도 맞닿아 있다. 하이에크는 1976년 저서 ‘화폐의 탈국가화(Denationalisation of Money)’에서 화폐는 국가가 강제하는 법정통화가 아니라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선택되는 ‘상품’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제시한 ‘좋은 화폐’의 조건은 명확했다. 국가가 발행하지 않는 비국가적 통화, 정치적 재량이 아닌 규칙 기반의 통화 정책, 전 세계 누구나 자유롭게 채택할 수 있는 구조, 중앙 발행자가 없어 압력이나 교체가 불가능한 구조, 그리고 기관의 승인 없이 결제가 가능한 시스템이다. 이러한 특징은 오늘날 비트코인의 설계 원칙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비트코인은 완벽한 화폐는 아니지만 하이에크가 말한 조건을 현실에서 처음 충족할 가능성이 있는 통화 네트워크로 평가된다. 특히 누구도 쉽게 중단시킬 수 없는 방식으로 등장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가격 변동성은 시장이 새로운 형태의 희소 자산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탄생 비용’에 가깝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반면 현재 암호화폐 산업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용 사례로 꼽히는 스테이블코인은 다른 성격을 가진다. 스테이블코인은 빠르고 프로그래머블하며 국경 간 이동이 쉽지만 실제로는 화폐를 탈국가화하기보다는 기존 국가 화폐의 디지털 확장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대부분의 스테이블코인은 달러와 연동돼 있다. 이는 곧 달러의 인플레이션 정책, 금융 감시 체계, 제재 체제, 은행 시스템의 병목, 규제 정책에 함께 묶인다는 의미다. 즉 스테이블코인은 개방형 네트워크에서 작동하지만 기반 자산은 여전히 국가 통화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스테이블코인은 탈중앙 화폐와 경쟁 관계에 놓일 수도 있다. 비트코인이 화폐 탈국가화를 상징한다면 스테이블코인은 더 편리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가진 ‘국가 화폐의 확장판’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 논의는 AI 에이전트 경제가 등장하면서 더욱 흥미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인간은 감정적이고 정치적이며 단기적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지만, 기계는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 에이전트형 소프트웨어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AI가 서비스, 데이터, 연산 자원, API 호출, 저장 공간, 추론 작업 등을 자동으로 구매하는 경제 구조가 등장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MCP(Model Context Protocol) 같은 프레임워크는 이미 에이전트 간 상호작용을 전제로 설계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AI 에이전트가 선호하는 화폐의 기준도 달라질 수 있다. 기계는 브랜드나 서사를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 대신 기계가 읽을 수 있는 거래 메타데이터, 즉시 실행되는 결제 확정성, 다른 시스템과의 조합 가능성, 낮은 거래 비용, 검열 저항성, 예측 가능한 통화 규칙 같은 요소를 중시한다.

결국 에이전트는 ‘좋은 인프라처럼 작동하는 화폐’를 선택하게 된다. 스테이블코인은 발행자가 페그를 유지해야 안정성이 유지된다. 이때 에이전트는 발행자의 실패 가능성, 정책 리스크, 검열 위험, 금융 시스템 스트레스 상황에서의 결제 위험을 평가할 수 있다.

반면 비트코인은 가격 변동성이 존재하지만 통화 발행 규칙이 명확하고 누구의 결정에도 좌우되지 않는다. 중앙 기관이나 규제 당국, 특정 국가의 재정 상태에 의존하지 않는 구조라는 점에서 기계에게는 더 ‘읽기 쉬운 시스템’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결국 인간이 정치와 습관, 공포에 얽혀 최적의 화폐를 선택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관점이 제기된다. 오히려 국적이나 정치에 무관심한 AI 에이전트가 신뢰성과 효율성을 기준으로 새로운 화폐 네트워크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화폐의 탈국가화는 철학적 혁명이 아니라 기술적 필연으로 나타날 수 있다. 정치적 이념이 아니라 기계 경제의 효율성이 새로운 화폐 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본 기사는 시장 데이터 및 차트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