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가 암호화폐를 받아들인 지 2년 만에, 이번엔 크립토 거래소가 주식과 지수까지 끌어들이며 시장 구조가 뒤바뀌고 있다. 이른바 ‘역방향 브리지’ 흐름이 빠르게 확대되는 모습이다.
코인게코에 따르면 2026년 1월부터 5월까지 전통 자산을 추종하는 ‘무기한 선물(PERP)’ 거래 규모는 1조3200억 달러(약 1907조 원)에 달했다. 이는 2025년 전체 거래량 1042억 달러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월별 거래량 역시 2025년 1월 2억3000만 달러에서 2026년 5월 3471억 달러로 급증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암호화폐 거래가 전부였던 거래소들이 이제는 주식 기반 파생상품 비중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그레이시 첸 비트겟 CEO는 “현재 전체 거래량의 약 28%가 주식 관련 상품에서 나온다”고 밝혔다.
바이낸스 역시 비슷한 흐름을 짚었다. 전통 금융이 암호화폐 시장의 혁신을 흡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이낸스의 시장 구조 담당 셔닛 잔은 “무기한 선물은 크립토에서 시작됐지만 이제 전통 금융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상품 확장이 아니라 시장 접근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전통 금융이 암호화폐 투자 통로를 제공했다면, 이제는 크립토 플랫폼이 주식과 지수에 대한 ‘접근성’을 제공하는 구조다.
현재 거래소에 상장된 주식 PERP는 실제 주식을 보유하는 개념이 아니다. 대신 가격을 추종하는 계약 형태로, 의결권이나 보호 장치는 없다.
그럼에도 수요는 빠르게 늘고 있다. 투자자들은 실제 주식을 사지 않고도 24시간 가격 변동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 사례로는 하이퍼리퀴드(Hyperliquid) 기반 플랫폼이 S&P500 지수를 온체인 무기한 선물 형태로 출시한 것이다. 이 상품은 미국 외 투자자도 24시간 S&P500 거래가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코인게코는 2025년 1월부터 2026년 5월까지 약 360개의 전통 자산이 크립토 거래소에 상장됐다고 분석했다. 특히 현물보다 PERP 상품 중심으로 확대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시장 참여자별로 PERP를 찾는 이유는 다르다. 기관 투자자에게는 거래 시간 제약이 핵심 문제다. 미국 증시가 열리기를 기다릴 필요 없이 포지션을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개인 투자자, 특히 미국 외 투자자는 접근성 자체가 이유다. 특정 국가에서는 테슬라($TSLA)나 S&P500 같은 자산에 투자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오지 일락 CMT 디지털 투자자는 “기관에는 ‘마찰 감소’, 개인에는 ‘실질적 접근성’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규모는 아직 제한적이다. 토큰화된 주식 PERP 거래량은 2026년 5월 340억 달러로 늘었지만, 이는 전체 주식 시장의 1% 미만 수준이다.
코인베이스와 바이낸스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에브리싱 거래소’ 구축을 추진 중이다. 하나의 계정으로 암호화폐, 주식, 파생상품을 모두 거래하는 구조다.
코인베이스는 영국 금융당국(FCA) 인가를 바탕으로 주식 및 파생상품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키스 그로스 코인베이스 영국 CEO는 “무기한 선물이 핵심 전략”이라며 통합 플랫폼 구상을 강조했다.
장기적으로는 다양한 자산을 한곳에 모아 담보 활용까지 가능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예를 들어 주식 보유분을 담보로 암호화폐 파생상품 거래를 하는 방식이다.
바이낸스는 이미 일부 고객을 대상으로 토큰화된 주식을 담보로 사용하는 모델을 시험 중이다. 엔비디아 같은 주식을 토큰 형태로 보유하고 이를 다른 거래의 담보로 활용하는 구조다.
이는 기존 암호화폐 담보 시스템을 전통 자산으로 확장한 것이다. 셔닛 잔은 “미국 시장이 40년 동안 만든 구조를 몇 주 만에 구현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기관 자금 대규모 유입에는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수탁, 청산, 규제 등 인프라가 아직 완전히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탈중앙화 거래소는 보안과 해킹 우려가 여전히 장벽으로 작용한다.
결국 단기적으로는 라이선스를 갖춘 중앙화 거래소가 주도권을 가져갈 가능성이 크다. 시장 참가자들이 원하는 것은 ‘탈중앙화 이념’보다 ‘신뢰 가능한 상품’이기 때문이다.
이번 흐름은 단순한 상품 확장을 넘어 금융시장 구조 자체를 재편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자산이 아니라 ‘접근 방식’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저작권자 ⓒ TokenPo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