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이 14일 체결한 3천500억 달러 규모의 전략적 투자 관련 업무협약(MOU)과 관세협상 세부 내용을 담은 공동 설명자료(팩트시트)를 공개하며, 긴 협상 과정이 이정표에 도달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미국의 주도적 구조와 분쟁 해결 체계의 미비점을 지적하며, 향후 협의가 더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번 합의는 반도체와 자동차 등 한국의 주력 산업이 영향을 받는 분야에 대한 관세 조건을 다룬 것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산 메모리 반도체에 대해 대만, 일본, 유럽연합(EU) 등 주요 경쟁국들과 비교해도 불리하지 않은 조건이 명시되면서, 업계가 우려해온 불확실성이 일부 해소됐다. 특히 메모리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공급 안정성에도 직결되는 만큼, 미국도 과도한 관세 부과는 자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자동차 산업에서도 긍정적인 변화가 나왔다. 한때 25%에 이르렀던 미국 내 관세율이 15%로 인하되면서, 한국 자동차와 부품 수출기업의 부담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의약품과 목재 제품 등 일부 품목도 0% 또는 기존 최혜국대우(MFN) 수준에서 유지키로 해 주요 수출 품목의 대미 접근성이 개선됐다.
하지만 이번 MOU의 구조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한국이 업무조정을 총괄하는 협의위원회를 맡은 반면, 미국은 실제 투자 의사결정을 내리는 투자위원회를 장악하고 있어 의사결정 권한에 치우침이 있다는 지적이다. 더불어 분쟁 발생 시 해결 규정이 '우호적 협의'처럼 추상적으로만 규정돼 있어, 투자 환경의 안정성이 부족하다는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외환시장과 관련해서는 미국 내 채권 발행이나 대출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항이 삽입돼, 한국 기업들의 달러 조달 부담을 줄이는 성과도 있었다. 이로 인해 매년 200억 달러를 초과하지 않는 투자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보다 유연한 조달 구조가 가능해졌다.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가 당장의 불확실성을 완화하는 데 기여했지만, 자동차 산업과 같이 비용 대비 이득이 충분한지에 대한 의문은 남았다고 평가한다. 또 다자 간 무역 질서가 약화된 상황에서 한국은 미국과의 협력 못지않게 일본, 유럽 등 여러 국가들과의 경제 공조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번 협상은 포괄적 틀에서 중요한 진전임에 분명하지만, 앞으로 세부 조건 등 '작은 줄기'에 대한 조율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국 산업의 상업적 합리성을 지키면서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확보하는 과정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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