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유족이 2021년 4월 상속세 신고 이후 5년에 걸친 분납 절차를 마무리하면서 고 이건희 선대회장 유산에 대한 상속세 12조원을 모두 납부했다. 국내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초대형 상속세를 완납한 데 더해, 의료 지원과 문화재·미술품 환원까지 병행하면서 기업이 축적한 부를 사회에 되돌리는 방식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재계에 따르면 이번 상속세 완납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홍라희 리움미술관 명예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 등 유족이 2020년 10월 별세 이후 연부연납 제도(세금을 여러 해에 나눠 내는 방식)를 활용해 총 6차례에 걸쳐 납부를 이어온 끝에 이뤄졌다. 상속 대상에는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삼성물산 등 주요 계열사 지분과 부동산이 포함됐고, 전체 세액은 12조원에 달했다. 이는 2024년 기준 국가 전체 상속세 세수 8조2천억원보다도 약 50% 많은 규모여서, 단일 상속 사례가 국가 재정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받아들여진다.
이 과정은 단순히 거액의 세금을 냈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대규모 상속세는 그만큼 민간에 축적된 자산 일부가 조세를 통해 공공 재원으로 이전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이런 재원이 복지와 보건, 사회 기반 확충에 간접적으로 보탬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유족들이 상속세 신고 당시 “세금 납부는 국민의 당연한 의무”라고 밝힌 점도, 국내 대표 기업 집안이 법과 원칙에 따라 납세 책임을 이행했다는 상징성을 키운 대목이다.
삼성가의 사회 환원은 납세에 그치지 않았다. 유족들은 2021년 국립중앙의료원에 7천억원을 출연해 중앙감염병병원 건립 등을 지원했고, 서울대병원에는 소아암·희귀질환 환아 지원을 위해 3천억원을 기탁했다. 정부와 공공의료 체계가 감염병 대응 역량을 키우고 중증 소아 환자 치료 기반을 넓히는 데 민간 자금이 투입된 셈이다. 특히 2030년 서울 중구 완공 예정인 150병상 규모의 중앙감염병병원은 신종·고위험 감염병 진료와 연구, 교육을 맡는 국가 거점 역할을 하게 된다. 서울대병원 지원금도 지난 5년간 약 2만8천명의 어린이에게 치료와 진단 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화 분야에서의 파급력도 컸다. 유족들은 2021년 이 선대회장이 평생 수집한 소장품 2만3천여점을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지방 미술관 등에 기증했다. 당시 시장에서는 이들 작품의 가치를 최대 10조원 수준으로 추정했다.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은 국민의 문화 향유 기회를 넓혔을 뿐 아니라, 한국 박물관·미술관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계기도 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순회전 효과 등에 힘입어 지난해 연간 관람객 약 650만명을 기록했고, 해외에서도 미국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을 시작으로 시카고 미술관, 오는 10월 영국 런던 영국박물관까지 전시가 이어질 예정이다. 민간의 문화재 환원이 국내 문화 소비를 넓히는 데서 끝나지 않고, 한국 문화의 국제적 존재감을 키우는 통로로도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이번 상속세 완납은 초대형 납세 의무 이행과 공공의료·문화예술 지원이 함께 맞물린 사례로 읽힌다. 기업 총수 일가의 자산 이전이 사회적 책임 논의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대기업과 고액 자산가의 사회 환원 방식, 그리고 상속과 공공 기여를 둘러싼 사회적 기대 수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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