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내부에서 기준금리 방향을 두고 인하보다 인상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는 공개 발언이 나오면서 통화정책 기조가 전환점에 들어섰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는 아시아개발은행 연차총회와 아세안+3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참석차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를 방문한 자리에서 3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나, 이제는 금리 인하를 멈추는 수준을 넘어 인상 가능성까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유 부총재는 금융통화위원회 당연직 위원인 만큼, 이번 발언은 한국은행 내부의 정책 인식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최근 금통위원급 인사가 공개적으로 금리 인상을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가 이런 판단의 근거로 든 것은 성장과 물가의 흐름이다. 한국은행은 4월 기준금리 동결 당시 중동 전쟁 여파로 성장률은 낮아지고 물가는 오를 수 있다고 봤는데, 이후 상황은 예상과 다르게 전개됐다는 설명이다. 유 부총재는 올해 성장률이 당초 전망치인 2.0%에서 크게 밀리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고, 물가상승률은 기존 전망치인 2.2%를 웃돌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반도체 경기 회복이 수출을 끌어올리고 있고, 정부 부양책이 소비 심리를 되살리면서 경기 하방 압력이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물가는 각종 정부 대응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방 압력, 다시 말해 더 오를 가능성이 강한 상태라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시장의 관심은 5월 28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로 쏠리고 있다. 유 부총재는 그 회의에서 연내 또는 특정 시점 이후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는 신호가 나올 수 있느냐는 질문에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답했다. 다만 중동 정세와 대외 금융시장 변동성처럼 불확실성이 큰 만큼, 이달 말까지 들어오는 지표를 더 확인한 뒤 정책을 판단하겠다고 설명했다. 현재와 비슷한 경기·물가 흐름이 이어진다면 금통위원들이 점도표 방식으로 제시하는 향후 6개월 금리 전망 분포도 2월보다 전반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점도표는 위원들이 생각하는 향후 금리 수준을 점으로 표시해 시장에 보여주는 방식으로, 중앙은행의 속내를 가늠하는 자료로 활용된다.
환율과 성장 체력에 대한 평가도 함께 내놨다. 유 부총재는 최근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선을 넘나든 뒤 1,470∼1,480원 부근에서 움직이는 데 대해, 우리 경제의 기초여건에 비춰 과거보다 높은 수준인 것은 맞지만 시장이 이를 심각한 불안 요인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또 원화 국제화는 필요하지만 단순히 규제를 푼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라, 국제금융시장에서 실제로 원화 사용이 늘고 환율 변동성이 완화되는 방향이어야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 성장률 반등은 놀랄 만한 결과라고 평가했고, 한국 경제를 대만과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한국은 반도체뿐 아니라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산업 기반이 더 넓고 경제 규모도 크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가 제시한 한국의 잠재성장률 전망치에 대해서는 한국은행 추정치보다 지나치게 낮다며 다소 과한 평가라고 선을 그었다.
반도체 의존도가 커지는 데 따른 우려에 대해서는 산업 쏠림 자체보다 반도체 호황이 꺾이거나 다른 부문으로의 파급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칠 가능성을 더 경계해야 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이런 부분은 정부의 구조조정이나 재정 정책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국내외에서 반도체 상승 사이클이 과거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시각도 많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결국 한국은행의 시선은 경기 부양보다 물가 안정 쪽으로 다시 조금씩 이동하는 모습이다. 이 같은 흐름은 향후 중동 정세와 국제유가, 환율, 국내 물가 지표가 현재 수준을 유지하거나 더 자극될 경우, 기준금리 동결 기조가 예상보다 빨리 인상 검토 국면으로 넘어갈 가능성을 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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