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2026년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0%에서 2.6%로 크게 올려 잡았다. 반도체 수출이 예상보다 강하게 늘면서 성장 흐름이 뚜렷해졌지만,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른 고유가 충격으로 물가는 더 빠르게 오를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28일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 성장률을 2.6%로 제시했다. 지난 2월 전망보다 0.6%포인트 높은 수치로, 한국 경제가 무리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성장 속도로 여겨지는 잠재성장률 약 1.8%를 상당폭 웃돈다. 1분기 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1.7%로 기존 예상치를 크게 넘어선 데다, 반도체와 정보기술 수출이 전반적인 경기 회복을 끌어올린 점이 반영됐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반도체 경기와 정보기술 수출 확대가 성장률을 0.7%포인트 높이고, 정부 추가경정예산과 증시 호황도 각각 0.2%포인트, 0.1%포인트의 상방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부 항목을 보면 수출과 설비투자가 성장률 상향을 이끈 핵심 동력으로 꼽힌다. 한국은행은 올해 재화수출 증가율을 4.9%로, 설비투자 증가율을 4.4%로 예상해 지난 2월보다 전망치를 큰 폭으로 높였다. 민간소비도 2.0% 증가로 소폭 상향 조정했다. 반면 건설투자는 0.6% 증가에 그칠 것으로 봐 상대적으로 회복 속도가 더딜 것으로 진단했다. 반도체 수출 호조에 힘입어 경상수지 흑자 전망도 2천500억달러로 높아졌다. 취업자 수는 올해 18만명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지난해보다 다소 둔화한 수준이지만, 추가경정예산 집행과 돌봄 분야 일자리 확대가 고용을 떠받칠 것으로 분석됐다.
다만 성장률 상향과 별개로 물가 부담은 한층 커질 전망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2.2%에서 2.7%로 올렸다. 중동 지역 불안이 길어지면서 국제유가가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석유류 가격 상승이 시간이 지나며 다른 품목 가격으로 번지는 이른바 파급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변동성이 큰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도 2.4%로 예상돼 지난 2월 전망보다 높아졌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8월 통신요금 할인에 따른 기저효과까지 겹치면서 올해 8월 소비자물가와 근원물가가 모두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내년 전망도 함께 조정됐다. 한국은행은 2027년 성장률 전망치를 1.8%에서 2.1%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에서 2.3%로 각각 올렸다. 반도체 상승 사이클이 내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이 반영된 결과다. 한국은행은 반도체 수출이 예상보다 더 강하면 올해와 내년 성장률이 추가로 높아질 수 있다고 봤지만, 인공지능 투자 수익성에 대한 우려로 빅테크 기업들이 투자 속도를 늦추면 성장세가 약해질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함께 제시했다. 중동 정세 역시 핵심 변수다. 미국과 이란의 협상이 진전돼 호르무즈 해협 통항이 정상화되면 성장과 물가 부담이 모두 완화될 수 있지만, 반대로 긴장이 장기화하면 성장률은 더 낮아지고 물가는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한국 경제가 수출 회복의 힘으로 성장세를 이어가더라도, 에너지 가격과 지정학적 위험이 물가와 통화정책의 가장 큰 변수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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