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금리 상승의 그늘, 한국 증시 위협하다

| 토큰포스트

글로벌 장기금리가 급등하면서 그동안 한국 증시 상승을 떠받쳤던 유동성 환경이 빠르게 약해지고 있다. 반도체 업황 개선과 기업 지배구조 개편 기대는 여전히 살아 있지만, 시장 전체를 밀어 올리던 가장 큰 바탕인 저금리·풍부한 자금 흐름이 흔들리면서 코스피도 새로운 부담 요인을 맞는 모습이다.

지난해 4월 이후 한국 증시 강세를 이끈 힘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 세계적으로 돈이 많이 풀린 유동성 환경, 반도체 경기 회복 기대, 그리고 기업 지배구조 개선 가능성이다. 이 가운데 최근 가장 눈에 띄게 변한 것은 유동성 여건이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 중앙은행은 양적완화(중앙은행이 국채 등을 사들여 시중에 돈을 푸는 정책)와 초저금리 정책으로 장기금리를 낮게 유지해 왔다. 여기에 코로나19 시기의 대규모 재정 지출까지 더해지면서 지난 15년 가까이 세계 증시는 사실상 저금리와 넘치는 자금의 수혜를 받아 왔다.

문제는 이런 환경이 금리 상승 앞에서 쉽게 흔들린다는 점이다. 실제로 2018년 글로벌 금리 상승기에는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500지수가 고점 대비 19.8%, 코스피는 19.5% 조정을 받았다. 2022년에는 충격이 더 컸다. 같은 지수가 25.4%, 코스피가 34.7% 하락했고, 성장주 비중이 높은 나스닥지수는 2018년 26.3%, 2022년 36.3% 떨어졌다. 최근 조정의 배경도 비슷하다. 미국 30년물 국채 금리는 5%를 넘어서며 2007년 6월 이후 최고 수준까지 올랐고, 영국 30년물 금리는 6%에 육박하며 1998년 5월 이후 가장 높아졌다. 일본 30년물 국채 금리도 1999년 이후 가장 높은 4%대로 상승했다.

지금 금리 상승이 더 위험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세계 경제가 과거보다 빚에 훨씬 더 민감한 구조가 됐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뒤 각국 정부는 금융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재정을 대거 투입했고, 코로나19 시기에는 경기 방어와 고용 유지를 위해 국채를 대규모로 발행했다. 그 결과 선진국 전반의 공공부채는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까지 불어났다. 미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금융위기 직전 60%대에서 현재 120%를 넘는 수준까지 올라섰다. 이런 구조에서는 금리가 오를수록 정부의 이자 부담이 빠르게 늘고, 재정 여력 축소를 메우기 위한 추가 국채 발행이 다시 금리 상승을 부르는 악순환이 생길 수 있다. 중앙은행들이 오랫동안 저금리를 유지하려 했던 것도 단순한 경기 부양뿐 아니라 이 같은 부채 부담을 관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금리 급등의 직접 배경으로는 두 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중동 전쟁 장기화다. 지정학적 불안이 국제유가를 밀어 올리면 물가 상승 우려가 다시 커지고, 이는 장기금리를 끌어올리는 재료가 된다. 다른 하나는 일본과 영국 등을 둘러싼 재정적자 우려다. 시장은 이제 물가만 보는 것이 아니라, 각국 정부가 커진 부채를 통제할 정치적 의지와 재정 건전성을 갖고 있는지도 따지고 있다. 2022년 영국에서 리즈 트러스 내각이 대규모 감세 정책을 내놓았을 때 국채 금리가 급등하고 영란은행이 시장 안정에 나서야 했던 일은, 재정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면 금리가 얼마나 빠르게 뛰는지를 보여준 대표 사례로 꼽힌다.

결국 앞으로 증시의 핵심 변수는 기업 실적만이 아니라 금리와 재정 신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미국이 중동 리스크를 조기에 통제해 유가 불안을 낮추고, 일본과 영국처럼 재정 우려가 큰 나라들은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시장에 내놓을 필요가 있다. 중앙은행 역시 필요하면 유동성 흡수 속도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금리 급등을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흐름은 향후 한국 증시가 반도체 호조 같은 개별 업종 재료만으로 움직이기보다, 세계 장기금리와 각국 재정정책의 신뢰 수준에 더 크게 좌우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본 기사는 시장 데이터 및 차트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많이 본 기사

지금 꼭 알아야 할 리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