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 장기화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이 발행한 투기등급 채권에 대한 투자심리가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물가는 오르는데 경기는 둔화하는 상황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경계감이 커지자, 시장은 같은 고수익 채권 안에서도 재무구조가 취약한 기업을 더 엄격하게 가려내기 시작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11일, 중동 전쟁이 3개월째 이어지는 가운데 호르무즈 해협의 장기 봉쇄 우려가 유가와 전반적인 물가를 끌어올리면서 기업 신용시장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과거 초저금리 시기에 낮은 비용으로 대규모 자금을 빌렸던 저등급 기업들이 문제의 중심에 서고 있다. 금리가 높아진 상태에서 경기까지 식으면, 이들 기업은 이자 부담이 늘고 영업 현금흐름은 줄어 상환 능력이 급격히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불안은 채권 금리차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투기등급 가운데 상대적으로 상단에 있는 비비플러스(BB+) 등급과, 부실 위험이 매우 큰 씨씨씨(CCC) 등급 회사채의 금리차는 6.4%포인트까지 벌어져 14개월 만에 가장 큰 수준을 기록했다. 전체 미국 정크본드(투기등급 회사채) 시장의 스프레드는 지난 1월 기록한 20년 만의 최저치에 가까운 수준이지만, 내부로 들어가 보면 위험이 큰 채권과 그나마 버틸 여력이 있는 채권 사이의 차별화는 오히려 심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현재 씨씨씨 등급의 스프레드는 비비(BB) 등급의 5배에 달해 1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벌어졌다.
배경에는 저금리 시절 집중됐던 인수·합병 자금 조달 구조가 있다. 신용 펀드 업계는 당시 대규모 인수·합병이 이어지면서 피인수 기업들에 약 2조달러의 부채가 쌓였고, 이 부담이 이제 고금리와 경기 둔화 국면에서 본격적인 취약 요인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보고 있다. 자산운용사 페더레이티드 헤르메스의 런던 채권 부문 그룹 책임자 미치 레즈닉은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기업들은 현금흐름 감소와 조달비용 상승이라는 이중 압박을 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헤지펀드 글렌던 캐피털의 공동 설립자 홀리 킴도 2021~2022년 인수·합병 열풍 당시 쌓인 부채 때문에 향후 채무 불이행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블룸버그 글로벌 크레딧 포럼 참석자 설문에서도 스태그플레이션은 신용시장의 최대 위험 요인으로 꼽혔다.
대출시장에서도 양극화는 뚜렷하다. 블룸버그 지수 기준으로 이번 분기 씨씨(CC) 등급 레버리지론(신용도가 낮은 기업에 제공되는 대출)의 종합수익률은 8% 손실을 기록한 반면, 비비 등급 레버리지론은 1.4% 수익을 냈다. 파산 위험이 큰 기업의 대출채권이 시장에서 헐값에 매도되며 가격이 급락한 영향이다. 다만 투자자 전반이 완전히 비관적으로 돌아선 것은 아니다. 상당수는 아직 기업들이 높은 차입 비용을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핌코의 레버리지 파이낸스 책임자 데이비드 포가쉬의 지적처럼 현재 고수익 채권 시장은 매우 양극화돼 있으며, 상대적으로 안전해 보이는 시장 안에 고위험 자산이 함께 섞여 있다는 점은 계속 경계할 대목이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유가와 물가, 경기 둔화 정도에 따라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부터 자금조달 여건이 더 빠르게 악화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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