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20조원 회사채 매수로 채권시장 수급 변동

| 토큰포스트

SK하이닉스가 올해 약 20조원 규모의 우량 회사채와 금융채를 사들이면서 국내 채권 발행시장의 수급 구도를 바꾸고 있다. 반도체 호황으로 쌓인 대규모 현금을 단기 중심으로 굴릴 필요가 커지자, 카드채와 은행채, 증권채, 공사채까지 가리지 않고 매수에 나선 결과다.

8일 채권시장과 증권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올해 들어 증권채와 회사채, 한전채 등 공사채, 은행채와 금융채, 여신전문금융회사채를 폭넓게 사들인 것으로 추산된다. 크레디트물은 국채처럼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이 아니라 기업이나 금융회사가 발행하는 채권을 뜻하는데, 통상 발행기관의 신용도에 따라 금리와 수요가 달라진다.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가 대형 증권사 5곳의 신탁 계정을 통해 자금을 운용하며, 필요하면 발행사에 직접 매수 가능 물량을 문의하는 방식으로 거래를 성사시키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 번 발행된 물량을 사실상 전부 가져가는 사례가 적지 않아, 발행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의 존재감이 빠르게 커졌다.

이 같은 대규모 매수의 배경에는 실적 개선에 따른 풍부한 현금 보유가 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1분기 매출 52조원, 영업이익 37조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고, 같은 기간 현금성 자산은 전 분기 말보다 19조4천억원 늘어난 54조3천억원으로 집계됐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렇게 늘어난 현금을 예금에만 묶어두기보다 비교적 안전하면서도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우량 채권에 나눠 담는 유인이 커진다. 여기에 SK하이닉스가 오는 10일 미국 주식예탁증서 상장과 거래 개시를 앞두고 있어, 이를 통해 조달한 달러가 원화로 들어올 경우 국내에서 운용해야 할 자금도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시장에선 SK하이닉스의 매수가 실제 발행 여건을 개선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고 본다. 이달 삼성증권 회사채 수요예측, 미래에셋증권의 1조2천600억원 규모 기업어음 발행, 신한투자증권 회사채 수요예측 등에서 대규모 수요가 형성된 배경에도 SK하이닉스 자금이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발행사들이 먼저 SK하이닉스의 수요를 확인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시장 전체를 상대로 투자자를 일일이 찾아야 하는 부담이 줄었다는 것이다. 연초에는 만기 1년 미만 단기물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만기 2년 안팎의 여전채와 공사채, 은행채, 회사채까지 투자 범위도 넓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이런 자금 유입이 채권시장 전반의 회복으로 곧장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문가들은 SK하이닉스의 매수가 얼어붙은 수요를 일부 메워주는 역할은 하지만, 유통시장에서의 거래까지 살리지는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최근 채권시장은 금리 부담이 여전히 크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지난달 연 3.94%까지 올라 2023년 1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한 뒤 현재 3.8% 부근에서 움직이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약해진 데다, 올해 들어 물가 상승 우려와 주식시장 강세로 자금이 채권에서 주식으로 옮겨가는 흐름이 겹친 영향이다. 한국은행은 16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결정할 예정인데, 시장은 향후 금리 방향이 분명해져야 채권 수요도 보다 안정적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흐름을 감안하면 SK하이닉스의 매수세는 당분간 발행시장 버팀목 역할을 하겠지만, 시장 전체의 온기를 되살리려면 통화정책 불확실성 완화와 투자심리 회복이 함께 따라와야 할 가능성이 크다.

본 기사는 시장 데이터 및 차트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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