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첨단·전략산업에 장기 자금을 투입하는 한국판 국부펀드를 내년 출범시키기로 하면서, 국가가 보유한 자산을 바탕으로 산업 경쟁력 강화와 투자 수익 확보를 동시에 노리는 새 투자 틀을 마련했다.
정부는 31일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주재로 비상경제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한국판 전략형 국부펀드 도입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구상은 단기 성과에 쫓기지 않는 초장기 인내자본을 바탕으로 인공지능, 반도체 같은 전략산업에 꾸준히 투자하겠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3대 메가프로젝트를 계기로 해외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진 만큼, 정부가 먼저 중심 투자자, 즉 앵커투자자 역할을 맡아 민간과 해외 자금을 함께 끌어들이겠다는 의도도 담겼다.
새 펀드는 기존 한국투자공사에 ‘전략산업 투자계정’을 따로 두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외환보유액을 굴리며 쌓아온 한국투자공사의 해외 네트워크와 투자 역량을 그대로 활용하겠다는 판단이다. 초기 자본금은 20조원 플러스알파 규모로 잡혔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정부가 보유한 공공기관 주식 16조원 이상, 상속·증여세로 현금 대신 받은 물납주식 약 4조원이 재원으로 들어간다. 정부는 여기에 국부 증진 목적의 민간 기부금도 활용할 계획이며, 기부자에게는 명예의 전당 헌액이나 출입국 우대 같은 혜택을 검토하고 있다.
투자 대상은 인공지능, 반도체 등 핵심 전략산업뿐 아니라 데이터센터 같은 기간산업, 해외 공급망의 핵심 기업까지 포함된다. 방식도 기존 정책금융과 다르다. 단순히 돈을 빌려주거나 보증을 서는 것이 아니라 직접 지분을 사들여 투자하고, 필요하면 의결권도 행사해 경영에 참여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재무적 수익만 노리는 투자가 아니라 기업 가치를 높이고, 국가 핵심 기술을 지키며, 해외 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에 대응하는 전략적 투자 성격이 강하다는 뜻이다. 아울러 모태펀드나 국민성장펀드 등 기존 정책펀드가 통상 4∼8년 안에 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청산 단계의 펀드가 발굴한 유망 기업에 후속 투자하는 이른바 이어달리기 방식도 도입한다.
운용 구조는 투자 독립성을 높이는 쪽으로 설계된다. 한국투자공사 이사회는 외환보유액을 맡는 위탁계정과 새 전략투자계정으로 나눠 운영하고, 전략투자 전담 투자위원회와 자문위원회도 별도로 둔다. 정부는 운영위원회를 통해 큰 방향만 제시하고 개별 투자 판단에는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운영위원회에는 전략산업 분야 민간위원 3명도 추가된다. 투자 수익은 재투자, 정부 배당, 국고 환수에만 쓰이도록 제한하고 비과세 특례도 추진할 계획이다. 정부는 다음 달 한국투자공사법 개정안을 발의해 연내 국회 통과를 추진한 뒤 내년부터 본격 가동할 예정이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정부가 재정을 직접 투입하기보다 보유 자산을 활용해 장기 성장 분야에 전략적으로 자본을 배분하는 방식으로 산업정책의 무게중심을 옮기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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