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금융 불안정의 씨앗이다”, “은행을 위협한다”, “자금세탁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언론과 일부 전문가, 정치권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다. “제도화보다 금지부터 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는 분위기다.
이 같은 우려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우리는 2017년 ‘박상기 난’의 기억을 되짚을 필요가 있다. 당시 가상자산 거래소 폐쇄 발언은 시장의 신뢰를 무너뜨렸고, 한국은 블록체인 산업 주도권 경쟁에서 한 발 뒤처졌다. 만약 지금 스테이블코인도 비슷한 방식으로 다룬다면, 또 하나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
본지는 앞서 “스테이블코인은 새로운 페트로달러”라는 사설을 통해, 이를 단순한 화폐가 아닌 청산 주권 경쟁의 핵심 인프라로 분석한 바 있다. 그 관점은 지금 더욱 절실해졌다. 미국은 스테이블코인을 국채 기반으로 발행하고, 이를 자국 금융시스템과 직접 연결하는 법제화를 진행 중이다. 민간 기업도 자체 블록체인을 통해 수수료와 결제를 직접 통제하며, 청산 질서를 설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여전히 실험과 규제의 프레임에 머물러 있다. CBDC는 사실상 중단됐고, 민간 스테이블코인도 명확한 제도화 없이 불안정한 상태다. 외국 체인 위에 올려진 원화 기반 토큰은 외부 질서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이는 화폐가 아닌 단순 디지털 증표에 불과할 수 있다.
이제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
스테이블코인을 위험 요소로만 볼 것이 아니라, 국내 자산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발행 구조와 청산 기준을 스스로 설계해야 한다. 국채·MMF 등 실물 자산과 연계한 방식, K-콘텐츠 같은 디지털 수출 자산을 유통과 결제 구조에 포함시키는 전략도 가능하다. 이는 통화 주권의 디지털 확장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조심스럽게 하나의 제안도 덧붙인 바 있다. 향후 남북 협력이나 통일이 논의되는 상황에서, 서로 다른 제도와 통화를 연결할 중립적인 디지털 화폐가 필요할 수 있다. 블록체인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양측이 동일 조건으로 접근할 수 있고, 독립적인 청산이 가능하다. 이는 감정이 아닌, 실용적 기술로 만들어가는 미래다.
스테이블코인은 단지 화폐가 아니라, 질서의 설계도다. 디지털 시대에는 누가 질서를 설계하느냐가 패권을 결정한다. 지금 설계하지 않으면, 남이 만든 구조 안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박상기 난’을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디지털 금융 질서에서 중심으로 나아갈 것인가. 지금이 그 갈림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