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에서는 온체인 데이터를 통해 스테이블코인이 디지털 경제에서 단순한 암호화폐를 넘어 유동성 공급원 및 글로벌 결제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특히 스테이블코인은 국경 간 송금에서 핵심적인 금융 인프라로 작동하며, 기존 카드 결제 시스템을 보완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의 고정된 가격 뒤에 숨겨진 금융 작동 원리와 발행사의 수익 모델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특히 테더(Tether)의 사례를 통해 구체적인 수익 구조를 살펴보겠습니다.
가격고정형(Fixed-Price Model) vs. 수익내재형(Reward-Bearing Model)
아래 [그림1]은 지난 1년간 주요 스테이블코인들의 가격 변동을 보여줍니다. 차트를 보면 가격고정형(Fixed-Price Model)에 속하는 USDT, USDC, DAI, BUIDL, USDE는 일시적인 미세 변동은 있으나 전반적으로 1달러에 안정적으로 고정되어 있습니다. 반면, 수익내재형(Reward-Bearing Model)에 해당하는 USDY, sUSDE, sDAI는 1달러를 웃도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같은 스테이블코인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가격 차이가 발생하는 걸까요?
[그림1; 스테이블코인 가격]
(자료출처: TradingView)
스테이블코인의 가격과 1달러 페그 안정성은 발행 방식, 담보 구조, 그리고 수익 분배 방식에 따라 달라집니다. 특히, 수익 분배 방식은 가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USDT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등록된 테더(Tether Limited)가 발행하며, USDC는 미국에 기반을 둔 서클(Circle)이 엄격한 미국 금융당국의 규제를 받으며 정기적인 감사 절차를 통해 발행됩니다. USDT 역시 최근에 월간 준비금 증명 보고서를 공개하기 시작했지만, 감사 기준과 투명성 면에서는 USDC보다 낮은 평가를 받습니다.
한편, BUIDL은 USDT나 USDC와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블랙록의 펀드를 시큐리타이즈(Securitize, Inc)가 토큰화해 발행한 실물자산(RWA) 연계 토큰인 BUIDL은, SEC에 등록된 공모 증권은 아니지만, 사모 형태로 발행된 증권형 토큰(Security Token)입니다. BUIDL은 1달러에 가격이 고정되어 있으나, 수익을 리베이스(Rebase) 방식으로 분배합니다. 리베이스란 이자 수익을 토큰 수량 증가로 반영하는 구조로, 이를 통해 보유자의 자산 가치는 간접적으로 상승합니다. 이처럼 BUIDL은 공급량 조정을 통해 1달러 가격을 유지하면서도, 수익은 내부적으로 반영하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BUIDL은 탈중앙화 금융(DeFi)과 중앙화 금융(CeFi)의 경계에 위치한 ‘허가형’ 블록체인 기반 스테이블코인으로, 다른 스테이블코인의 준비금 역할을 하거나 기관 간 B2B 거래에 자주 활용되고 있습니다.
수익 분배 방식에 따른 두 모델의 차이
수익내재형(Reward-Bearing Model)인 USDY, sUSDE, sDAI와 같은 스테이블코인은 이자 수익을 토큰 가격에 직접 반영하는 구조를 채택합니다. 이 때문에 [그림 1]에서 볼 수 있듯, 이들 토큰은 1달러를 초과한 가격에서 거래되며, 해당 가격에는 이자 수익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면, 가격고정형(Fixed-Price Model) 스테이블코인은 수익이 발생하더라도 이를 토큰 가격에 반영하지 않고, 토큰 수량 증가나 발행사의 수익으로 귀속시키며, 1달러 페그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결론적으로, 수익이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귀속되는가가 두 모델의 본질적인 차이를 만듭니다.
가격고정형 스테이블코인이 1달러 페그를 유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가상자산 시장에서 ‘기준 자산(Quote Asset)’으로 기능 때문입니다. 이러한 가격 안정성에 대한 시장 참여자들의 신뢰는 Curve Finance와 같은 탈중앙화 거래소(DEX)에서의 스테이블 AMM 메커니즘을 통해 실질적으로 구현됩니다. 만약 스테이블코인의 가격이 1달러에서 벗어나면, 이 AMM 메커니즘과 차익거래자의 개입으로 가격을 복원하며 페그 안정성이 유지됩니다. 1달러 페그는 가격고정형 스테이블코인의 가장 핵심적인 기능이자 본질적인 특성입니다.
수익내재형 스테이블코인의 또 다른 특성은 가격 변동성이 있어, 일반적인 고정 가격을 전제로 한 스테이블코인 스왑 풀에서는 운용이 어렵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이러한 토큰은 가격 변동을 허용하는 ‘가변 가격 풀(Variable Price Pool)’을 통해 관리되며, 자체 내재 수익뿐만 아니라, 다른 탈중앙화 금융(DeFi) 수익도 동시에 추구하는 특징을 가집니다.
예컨대, 에테나의 USDe는 이더리움 스테이킹 수익을 기반으로 파생상품을 활용해 자산 가격 변동 위험을 상쇄하는 델타 헤징 전략을 통해 변동성을 줄인 수익내재 모델의 스테이블코인입니다. 사용자가 에테나 프로토콜에 USDe를 예치하면, 누적된 수익이 토큰 가격에 반영된 sUSDe(Staked USDe)가 발행됩니다. 또한, sUSDe는 기존 스테이킹 수익 외에 별도의 유동성 공급 수익도 추가로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며, 이는 가변 가격 풀을 통해 운용됩니다.
이처럼 탈중앙화 금융(DeFi)은 스테이블코인의 수익 구조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금융 시스템에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채 이자를 별도로 거래 가능한 형태로 분리한 Pendle Finance와,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수익 극대화 전략을 자동으로 수행하는 프로젝트까지 등장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미래 금융 시스템의 모습을 매우 흥미롭게 바꿔나가고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의 수익 구조: 테더(Tether)를 중심으로
이러한 디파이 생태계의 진화는 스테이블코인의 역할을 단순한 결제 수단에서 수익 창출이 가능한 금융 자산으로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테더(Tether)와 같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들은 단순한 '디지털 화폐' 발행자를 넘어 글로벌 자본 시장에서 활약하는 자산운용 기관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테더는 시가총액 기준 세계 최대 스테이블코인인 USDT의 발행사입니다. 많은 이들은 테더가 단순히 USDT를 발행하고 준비금을 보유한다고 생각하지만, 테더는 준비금 대부분을 미국 국채 등 안전한 단기 금융상품에 투자하여, 금리 상승기의 높은 이자 수익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코인 발행사를 넘어 글로벌 대형 자산운용사에 필적하는 수익 모델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됩니다
테더의 준비금 구성은 보수적인 자산 운용 전략을 따릅니다. 현금 및 현금성 자산, 단기 기업채, 그리고 특히 금리 상승기에 유리한 미국 국채가 주요 비중을 차지합니다. 특히 2022년 이후 기준 금리 인상으로 미국 국채 금리가 급등하면서, 테더는 준비금의 상당 부분을 단기 미국 국채에 투자하며 안정적이면서도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테더의 2024년 연결 준비금 보고서에 따르면, 재무 상태와 순이익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료원: TETHER’s CONSOLIDATED FINANCIALS FIGURES AND RESERVES REPORT )
[표1; 테더의 자산과부채]
2024년 테더의 총자산은 1,575억 달러이며, USDT 총 발행량에 해당하는 1,366억 달러는 부채로 계상되어 있습니다
[표2; 테더의 준비금 자산 구성]
테더가 준비금으로 보유한 자산의 세부 내역을 살펴보면, 미국 국채, 환매조건부채권(Repo), 머니마켓펀드(MMF) 등 단기 금융상품이 1,183억 달러로 준비금 자산의 82%를 차지하며, 이 중 944억달러(준비금 자산의 65%)가 미국 국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표3; 테더의 자본변동표]
2024년 테더사는 137억 달러의 연결순이익을 기록하였는데, 이는 총자산 대비 약 8.7%의 투자수익률(ROI)로, 대부분의 자산을 안전자산에 투자하면서도 높은 성과를 낸 결과입니다.
이러한 수익 구조는 테더가 단순한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를 넘어 거대한 자산 운용사처럼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용자들은 USDT를 통해 가격 안정성을 얻는 동안, 테더는 사용자들의 자산을 다양한 안전자산에 보수적으로 운용해 이익을 창출하는 금융 메커니즘을 작동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 수익은 테더사의 운영 비용을 충당하고, 더 나아가 회사의 성장을 위한 재투자의 동력이 됩니다.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디지털 결제를 넘어, 자산 운용과 수익 창출이 가능한 새로운 금융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테더의 사례처럼, 발행사들은 자산운용사에 버금가는 모델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며 스테이블코인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국내 시장이 글로벌 경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규제 체계 정비가 시급합니다. 스테이블코인의 법적 지위 명확화, 준비금 공개 의무화 등을 통해 투명성과 신뢰를 확보하고, 금융당국과 업계가 협력해 혁신과 안정성을 모두 갖춘 규제 프레임워크를 마련해야 합니다.
이제는 논의의 단계를 넘어, 미래 금융 생태계를 선점하기 위한 실행 중심의 정책 대응이 요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