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은 해방의 기술로 등장했다. 중앙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화폐, 검열을 피해가는 거래, 신뢰를 코드로 대체하는 분산 시스템. 그러나 기술은 언제나 양면을 가진다. 도구는 중립적이지만, 그것을 쥐는 손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최근 전 세계 금융·기술 엘리트들이 ‘토큰화(tokenization)’라는 이름 아래 자연과 인간의 영역까지 디지털 자산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 숲, 강, 토지, 탄소배출권은 물론 개인의 데이터, 노동, 심지어 생체 정보까지 블록체인 위에 기록되고 분할 가능한 자산으로 거래되는 구조다. 문제는 이 흐름이 단순한 혁신을 넘어 ‘통제의 인프라’로 확장될 가능성이다.
자연의 금융화는 이미 진행 중이다. 남미 아마존, 중앙아프리카 자원, 유럽의 산림과 습지까지 ‘보존 금융’이라는 이름으로 토큰화 모델이 등장하고 있다. 생태계는 ‘측정 가능한 데이터’가 되고, 데이터는 ‘거래 가능한 권리’가 된다. 위성·센서·AI로 모니터링된 자연은 디지털 원장에 기록되고, 투자자는 해당 권리를 분할 소유한다.
표면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보존을 위한 자본 유입이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는 자연을 하나의 금융 상품으로 재편하는 과정이다. 숲은 생태계가 아니라 포트폴리오가 되고, 강은 공공 자산이 아니라 수익률 곡선이 된다. 환경 보호의 기준이 생태적 필요가 아니라 투자 수익이 될 때, 무엇이 우선순위가 될지는 자명하다.
더 민감한 문제는 인간 영역이다. 세계은행의 ‘휴먼 캐피털’ 지표, 사회성과채권(SIB), 블록체인 기반 난민 지원 시스템 등은 인간의 능력과 행동을 경제적 수치로 환산하는 흐름을 보여준다. 디지털 신원(Digital ID)과 결합된 프로그래머블 화폐는 개인의 소비와 활동을 실시간으로 기록하고 통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논의는 그 정점에 있다. 효율성과 투명성을 명분으로 하지만, 설계에 따라 사용처 제한, 만기 설정, 특정 조건 충족 여부에 따른 자금 동결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기술은 편리함을 제공하는 동시에 통제의 세밀함도 극대화한다.
블록체인은 본래 탈중앙화를 지향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거래소, 규제 기관, 대형 자산운용사, 글로벌 포럼 등 기존 권력 구조가 이를 흡수하는 양상도 뚜렷하다. 공개 원장은 투명성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영구적 기록이라는 특성은 감시의 도구로도 기능할 수 있다. 프라이버시 보호 기술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분산’은 형식에 그칠 위험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음모론적 상상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냉정히 분석하는 일이다. 토큰화는 자본 접근성을 높이고 유동성을 확대하는 혁신적 수단이 될 수 있다. 동시에 자연과 인간을 지나치게 계량화하고 금융화하는 과정은 민주적 통제와 공공성의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
기술은 방향을 강요하지 않는다. 설계가 방향을 만든다.
한국은 디지털 전환과 블록체인 수용에 있어 빠른 사회다. 그렇기에 더 신중해야 한다. 토큰화가 경제적 효율성만을 기준으로 확산될 경우, 우리는 편리함을 얻는 대신 선택권을 잃을 수 있다. 반대로 프라이버시 보호, 분산 거버넌스, 공공성 원칙을 명확히 한다면 토큰화는 새로운 산업과 투자 기회를 창출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 낙관’도 ‘기술 공포’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설계 단계에서의 철저한 검증, 민주적 감시, 그리고 투명한 규칙이다. 자연과 인간은 단순한 자산이 아니다. 수익률 곡선 위에 올려놓을 수 없는 가치가 존재한다.
블록체인은 족쇄가 될 수도 있고, 방패가 될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기술이 아니라 사회의 몫이다. 디지털 시대의 주권은 코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코드를 감시하고 통제할 시민에게 있어야 한다.
토큰화의 시대,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효율을 택할 것인가, 자유를 지킬 것인가.
정답은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만드는 제도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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