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이 머뭇대는 사이, 원화는 해외에서 먼저 토큰화된다

| 권성민

지난해 10월 블록체인 인프라 기업 IQ와 스테이블코인 프로토콜 Frax가 역외에서 세계 최초의 원화 연동 스테이블코인 KRWQ를 발행했다. 월가가 후원하는 크립토 거래소 EDXM 인터내셔널이 이를 기반으로 원화 무기한선물 출시를 예고하자, 블룸버그가 대서특필했다. 그로부터 반년 뒤인 지난달 30일, 글로벌 크립토 결제 기업 문페이(MoonPay)가 우리은행과 손잡고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글로벌 유통 인프라 구축에 나선다고 밝혔다.

6개월 사이에 해외 발(發) 원화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가 두 개 생겼다. 한국 규제 체계 안에서 탄생한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아직 단 하나도 없다.

■ 갈등만 1년, 법안은 제자리

원화 스테이블코인 법제화는 디지털자산 기본법 2단계에 담겨 있다. 그러나 이 법안은 발행 주체를 둘러싼 갈등으로 1년 넘게 표류 중이다.

한국은행은 은행 지분 51% 이상의 컨소시엄만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통화 안정이 근거다. 금융위원회는 원칙에는 공감하되 지분율을 법에 못 박는 데에는 신중하다. 핀테크·블록체인 업계는 이를 사실상 민간 진입 차단으로 본다. 금융위, 한국은행, 기획재정부, 국회 4자의 입장이 모두 다르다. 2025년 발의 약속은 불발됐고, 2026년에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입법 일정이 안갯속이다.

그 사이 세계는 움직였다. 미국은 지난해 7월 GENIUS Act를 법률로 제정했다.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연방 차원의 포괄적 규제 체계를 갖춘 것이다. EU는 MiCA 체제 아래 다수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를 인가했는데, 대부분은 은행이 아닌 전자화폐기관(EMI)이다. 일본과 싱가포르도 자국 내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하는 프레임워크를 마련했다.

한국만 "누가 발행하느냐"를 놓고 1년째 원점을 맴돌고 있다.

■ 논쟁은 국내에서, 실행은 해외에서

역설의 핵심은 이것이다. 한국이 발행 주체를 놓고 다투는 동안, 해외에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발행·유통·파생상품 거래까지 현실이 됐다.

KRWQ는 이미 이더리움과 Base 체인에서 운영 중이다. 준비금 비율 122.8%를 실시간 대시보드로 공개하고, 신한증권이 한국 국채(KTB)를 수탁한다. 월가 지원 거래소 EDXM은 기존 NDF 대비 비용이 50~75% 저렴한 원화 무기한선물 계약을 출시했다. 문페이는 EU MiCA 인가, 뉴욕 비트라이선스, 신탁 면허를 갖춘 상태로 한국 4대 시중은행과 컨소시엄을 결성했다.

규제 공백이 길어질수록 데이터와 유동성은 역외에 쌓인다. 체이널리시스에 따르면 2025년 6월까지 1년간 한국 원화 기준 스테이블코인 거래 규모는 약 640억 달러다. 대부분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이다. 한국이 자체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내놓지 못하면, 한국인의 디지털 금융 활동은 계속 달러 레일 위에서만 이루어진다.

■ 논의의 초점부터 바꿔야 한다

문제는 속도만이 아니다. 논의의 방향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타이거리서치는 최근 리포트에서 "지난 1년간의 논의는 발행 주체·감독 권한·리스크 경고라는 세 축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정작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가는 단 한 번도 공식 의제에 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국대 황석진 교수는 "지금은 누가 뭐라 하든 발행부터 해야 하는 단계"라며 "자본금 비율이나 지분 구조 같은 세부 사항은 시행령에서 정하면 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엑스크립톤 김종승 대표는 준비자산의 공백을 경고한다. "미국 GENIUS Act의 상호주의를 적용하면 스테이블코인 준비자산은 사실상 단기국채여야 하는데, 한국에는 미국처럼 3개월 단기국채가 없다." 발행 주체 논쟁에 매몰된 사이, 이보다 더 근본적인 과제는 논의조차 시작되지 못했다.

■ 시장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한국은 올여름 원화 24시간 거래를 허용한다. 역외 거래 규제 완화도 논의 중이다. 외환시장이 개방되는 방향으로 가는데, 그 위에 올라갈 디지털 레일은 한국이 아닌 해외 기업이 먼저 깔고 있다. 그 레일 위에 원화의 유통 데이터, 국채 수요 구조, 자본 이동 흐름이 쌓이고 있다. 한국이 나중에 제도를 만들어도, 데이터와 유동성의 선점 효과를 뒤집기는 쉽지 않다.

민주당 디지털자산TF 소속 안도걸 의원은 "상반기 중에라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부분적으로 시범 도입하는 규제 샌드박스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옳은 방향이다. 완벽한 제도를 기다리다 시장을 잃는 것이 더 큰 위험이다.

KRWQ와 문페이가 증명한 것은 하나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수요는 이미 존재한다. 그 수요를 한국 안에서 채울 것인가, 해외에 내줄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51%룰"이니 "발행 주체"니 하는 논쟁을 1년 더 끌 여유는 없다.

본 기사는 시장 데이터 및 차트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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