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SEC, '발행사 동의 없는' 토큰화 주식 허용 임박… 한국 STO 제도, 출발선부터 뒤처지나

| 권성민

미국이 또 한 번 판을 흔든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이르면 이번 주 토큰화 주식(tokenized stocks) 거래를 위한 '혁신 면제(innovation exemption)' 방안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가 16일(현지시간)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핵심은 발행 기업의 동의 없이도 제3자가 해당 기업 주식을 추종하는 토큰을 만들어 거래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점이다. 애플도, 엔비디아도, 테슬라도—본사가 모르는 사이에 그 회사 주식을 추종하는 토큰이 디파이(DeFi) 플랫폼에서 24시간 거래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이 토큰증권발행(STO) 법제화를 두고 수년째 공회전하는 사이, 미국은 STO를 건너뛰고 곧장 '발행사 없는 토큰화'라는 다음 단계로 향하고 있다.

무엇이 달라지나… '주식의 디지털 복제본'이 합법화된다

SEC는 토큰화 증권을 두 갈래로 구분해왔다. ▲발행사 또는 그 위임을 받은 주체가 토큰화하는 경우 ▲발행사와 무관한 제3자가 토큰화하는 경우다.

이번 면제안의 폭발력은 후자에 정식 거래 통로를 열어준다는 데 있다. 의결권이나 배당 같은 주주 권리가 100% 보장되지 않더라도, 해당 권리 일부만 제공하면 디파이 플랫폼에서의 상장·거래가 가능해진다. 권리를 전혀 제공하지 못하는 플랫폼은 상장 자격을 잃는 구조다.

업계는 이를 두고 "전통 주식시장 보호장치 밖에서 상장주식의 병행 시장(parallel market)이 작동하는지 시험하는 다년간의 실험"이라고 평가한다. 공정 가격, 투명성, 투자자 보호—한 세기에 걸쳐 미국 자본시장을 떠받쳐온 세 기둥의 일부가 우회되기 때문이다.

월가의 토큰화 전쟁… NYSE·나스닥·불리시가 뛰어들었다

폴 앳킨스(Paul Atkins) SEC 위원장 체제 아래 규제 완화가 가속화되자, 미국 증권시장은 '24시간 온체인 거래' 시대를 향한 인프라 경쟁에 돌입했다.

여기에 지난주 미 상원 은행위원회를 통과한 클래리티법(Clarity Act)도 가세했다. 가상자산 산업 대부분의 1차 규제권한을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넘기되, 디지털 증권 감독은 SEC가 유지하는 구조다. 미국이 가상자산 시장 규칙을 다시 설계하고 있다는 신호다.

한국 STO와의 결정적 차이… '발행사 중심' vs '시장 중심'

한국이 추진해온 토큰증권 제도는 철저히 발행사 중심 모델이다. 금융위원회가 그려온 그림은 분산원장 기반의 전자증권 확장판에 가깝다. 발행 주체가 명확하고, 명의개서대리인(예탁결제원)이 권리 관계를 관리하며, 자본시장법 테두리 안에서 작동한다.

반면 미국이 이번에 열려고 하는 문은 시장 중심·코드 중심 모델이다. 발행사가 모르는 사이에도, 제3자가 자동화된 스마트컨트랙트로 토큰을 만들고, 이용자들이 디파이에서 자유롭게 거래한다.

이 둘은 같은 '토큰화'라는 단어를 쓰지만 본질적으로 다른 체계다.

한국이 STO법 통과를 두고 22대 국회에서도 표류하는 사이, 글로벌 자본은 이미 '미국식 토큰화 주식'을 디폴트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국내 상장사 주식 역시 한국 규제권 밖의 미국 DeFi에서 '제3자 토큰' 형태로 유통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배제할 수 없다.

이는 단순한 제도 경쟁이 아니라 자본시장 주권의 문제다.

시장 분절화와 디파이 리스크… 누구의 책임인가

이번 면제 대상은 약 1,300억 달러 규모의 디파이 생태계에서 거래되는 토큰들이다. 그러나 디파이는 올해만 수억 달러 규모의 해킹 피해가 이어지며 보안 취약성을 거듭 드러냈다.

미국 증권산업금융시장협회(SIFMA)는 지난해 12월 "토큰화 시장에 시장 간 연결성과 가격 투명성 같은 표준이 없다면, 시장이 분절되고 무질서해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토큰화 전문 기업 시큐리타이즈(Securitize)의 브렛 레드피언 사장(전 SEC 거래·시장 부문 책임자)의 지적은 더 본질적이다.

"제3자가 애플이나 아마존을 발행사 없이 토큰화할 수 있다면, 같은 기업을 둘러싼 '래퍼(wrapper)'의 수에는 이론적 한계가 없다. 같은 주식의 디지털 복제본이 무한정 만들어질 수 있고, 투자자는 자신이 보유한 토큰의 실제 가치가 매 순간 얼마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게 된다."

월가 시장조성자 시타델 증권과 SIFMA도 KYC·AML 등 핵심 투자자 보호장치 약화를 우려하며 공식 반대 입장을 냈다.

SEC 내부도 일사불란하지 않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 면제를 강하게 밀어붙인 인물은 앳킨스 위원장의 오랜 동맹인 헤스터 페어스(Hester Peirce) 위원이지만, 일부 위원들은 동조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토큰포스트 시각: 한국이 놓치고 있는 것

미국의 이번 결정을 한국 시장이 가볍게 봐선 안 되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우리 기업의 주식이 우리 규제 밖에서 거래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ADR을 추종하는 '제3자 토큰'이 미국 DeFi에 등장하는 시나리오는 더 이상 공상이 아니다. 발행사 동의가 필요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한국 금융당국이 이를 추적하거나 규율할 수단은 사실상 없다.

둘째, STO 제도화 지연이 글로벌 표준 경쟁에서 한국의 입지를 잠식한다. 한국은 '발행사 중심·보수적' 모델로 신뢰성을 확보하는 길과, '시장 중심·개방적' 모델로 속도를 확보하는 길 사이에서 결정을 미뤄왔다. 미국이 후자로 가고, 홍콩·싱가포르가 그 사이를 노린다면 한국의 자리는 어디인가.

셋째, 원화 표시 토큰화 자산의 부재가 문제로 떠오른다. 달러 기반 토큰화 주식이 글로벌 표준이 되는 순간, 원화 기반의 토큰화 자본시장은 출발선에서 한 발 더 밀린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가 이제야 본격화되는 한국의 현실과 정확히 같은 구조의 지체다.

토큰화는 이미 결정된 미래다. 문제는 누가 규칙을 쓰느냐다. 미국은 지금 그 규칙을 쓰고 있다.

한국은, 무엇을 하고 있나.

본 기사는 시장 데이터 및 차트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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