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큰분석] 스테이블코인은 시작일 뿐... 4조 달러 '온체인 머니' 3층 구조가 온다

| 알파리포트

스테이블코인이 글로벌 디지털자산 시장의 화두를 장악하고 있는 동안, 그 뒤편에서 훨씬 더 큰 규모의 변화가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연간 4조 달러 규모의 토큰화 예금이 이미 글로벌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은행(G-SIB)들 사이에서 움직이고 있으며, 이는 스테이블코인 결제 규모를 한 자릿수 자릿수만큼 능가하는 수준이다.

세계 최대 컨설팅 펌 맥킨지가 지난 21일 발표한 보고서 「스테이블코인을 넘어서: 온체인 머니의 새로운 아키텍처」는, 디지털자산 시장의 진짜 게임이 어디에서 벌어지고 있는지를 정확히 짚어낸다. 본지는 이 보고서의 핵심 통찰을 한국 시장의 맥락에서 분석한다.

■ 'FOMO'가 가린 진실 —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실제 규모

먼저 현재 상황을 정확히 짚어야 한다. 시장 기대치와 실제 규모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2026년 초 기준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유통 총량은 3,000억 달러를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며, 이 중 약 99%가 미국 달러 표시이고 85%가 서클(Circle)과 테더(Tether) 두 회사에 의해 발행되고 있다. 더 주목할 점은 지난 6개월간 스테이블코인 유통량이 사실상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같은 기간 블록체인에서 발행된 국채 펀드와 사모대출 같은 비현금 자산의 가치는 30% 이상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한 가지 중요한 가설을 흔든다. "스테이블코인이 기본 결제 자산이 되고, 다른 토큰화 자산이 이와 보조를 맞춰 성장한다"는 통념이 데이터로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아르테미스 애널리틱스 데이터를 인용한 맥킨지 분석은 더 냉정한 현실을 보여준다. 2025년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지원한 유기적 결제 활동은 약 4,000억 달러 수준으로, 글로벌 결제 시스템을 통해 매년 움직이는 수천조 달러(quadrillion)에 비하면 극히 작은 비중이다.

■ 진짜 게임 — 'J.P.모건 키넥시스(Kinexys) 단독 1조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잠시 정체된 사이, 글로벌 대형 은행들은 이미 스테이블코인보다 한 자릿수 더 큰 규모의 자금을 토큰화 예금 인프라를 통해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연간 4조 달러 이상으로 추정되며, 기존 기관 결제·유동성·자금관리 워크플로우에 직접 내장되어 있다. 시티은행, BNY 등 십수 개 기관이 자체 플랫폼에서 라이브 또는 파일럿 단계의 토큰화 예금을 공개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JP모건의 키넥시스(Kinexys) 한 플랫폼만으로도 연간 1조 달러 이상의 토큰화 예금 이체를 처리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내부 자금 이동, 그룹사 간 결제, 기관 정산 등을 지원한다. 과거부터 의미 있는 국경 간 결제 사업을 영위해온 다른 대형 은행들도 비슷한 규모를 처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수치가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언론과 규제 논쟁이 스테이블코인에 집중되어 있는 동안, 진짜 자금의 토큰화는 은행 시스템 안에서 이미 한참 진행되고 있다. 디지털자산 업계가 외부에서 은행 시스템을 대체하려 했다면, 은행은 안에서 자신의 자금을 토큰화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 핵심 통찰 — '3층 구조 통화 스택'의 등장

맥킨지가 그리는 미래는 단일 자산이 지배하는 구조가 아니라 3층 구조 통화 스택(three-layer monetary stack)이다.

▲ 온체인 머니의 3층 구조. 스테이블코인(움직이는 돈), 토큰화 예금(머무는 돈), CBDC(정산 화폐)가 공존하는 새로운 글로벌 통화 아키텍처. 자료: 맥킨지

① 스테이블코인 — '움직이는 돈(money in motion)' 빠르고, 소액이며, 국경을 넘는 거래에 최적화됨. 자동화된 지급 처리. 특히 전통 은행 접근성이 제한된 영역에서 강점.

② 토큰화 은행 예금 — '머무는 돈(money at rest)' 기업 자금 관리 잔고, 기관 결제, 은행 간 정산을 대규모로 지원. 본지가 앞서 분석한 J.P.모건 키넥시스, 시티·BNY의 토큰화 예금 인프라가 여기에 해당.

③ 토큰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 '정산 화폐(settlement money)' 서로 다른 시스템 간 거래상대방 리스크를 제거하는 궁극의 글로벌 정산 자산. 국경을 초월한 취소불가성(irrevocable finality)을 가능케 함.

이 3층 구조는 오늘날 금융 시스템의 복잡성을 단순히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서 거울처럼 재구성하는 형태다. 단일 지배 자산이 아닌, 이 세 층이 어떻게 공존하고 상호운용되는지가 시스템의 성공을 결정한다.

■ 왜 은행이 스테이블코인보다 토큰화 예금을 선호하는가

맥킨지 보고서의 가장 날카로운 분석은 스테이블코인과 토큰화 예금이 은행 대차대조표에 미치는 영향의 본질적 차이다.

▲ 제3자 스테이블코인은 은행 예금의 85%를 부외 자산으로 이동시키는 반면, 토큰화 예금은 100%를 은행 대차대조표 안에 유지한다. 자료: 맥킨지

서클, 테더 같은 제3자 발행 스테이블코인은 소매 은행 예금을 토큰화 부채로 전환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1,000달러가 제3자 스테이블코인으로 전환될 때, 통상 단 15%만 도매 준비금으로 은행 시스템에 돌아오며, 나머지 85%는 미국 국채 같은 부외 자산에 투자된다.

은행의 우려는 단순한 자금 유출이 아니라 '1차 고객 관계'의 침식이다. 가치가 제3자 결제망으로 이동하면, 은행은 더 이상 그 거래의 1차 서비스 제공자가 아니다. 디지털 잔고가 늘어날수록 전통 은행의 자금 조달 구조는 압박을 받고, 순이자마진(NIM)과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에 부담이 생긴다.

이에 대한 은행의 응수가 토큰화 예금이다. 토큰화 예금은 1,000달러 전액을 은행 대차대조표에 그대로 유지한다. 은행은 새로운 형태의 사적 화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예금 부채를 블록체인 레일 위에 표현할 뿐이다. 이 접근법은 전통 은행 시스템에 내재된 법적·규제적·회계적 틀을 그대로 보존하면서도, 스테이블코인의 기능적 장점(프로그래머빌리티, 동시 교환, 정산 간소화)을 가져온다.

■ 규제가 토큰화 예금의 손을 들어준다

규제 환경 또한 은행 발행 자산에 유리하게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 보고서의 중요한 관찰이다.

테이블코인 vs 토큰화 예금의 규제 비교표 (이자 지급, LCR 처리 등)

스테이블코인은 유럽 MiCA, 미국 GENIUS Act 같은 규제 체계의 적용을 받는다. 이 체계들은 소비자 보호와 라이선싱·고품질 준비금에 대한 명확성을 제공하지만, 이자 지급 금지 같은 제약도 부과한다. 대부분의 관할권에서 스테이블코인 보유자는 라이선스 발행자로부터 수익을 얻을 수 없으며, 이는 기업과 기관에 대한 매력을 제한한다.

반면 토큰화 은행 예금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로벌 규제 체계가 없으며, 거의 모든 관할권에서 기존 은행 규제 안에 속한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은행 대차대조표에 남아 있는 한 전통 예금과 동일하게 취급된다. 토큰화는 형태(form factor)를 바꿀 뿐 부채의 법적 성격이나 LCR 처리, 자금조달 안정성을 바꾸지 않는다. 이는 대규모 잔고를 관리하는 수익 민감 기업과 기관에게 매력적이다. 은행이 예금에 이자를 계속 지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풀어야 할 숙제 — '상호운용성'이라는 마지막 관문

토큰화 예금이 모든 면에서 우월한 것은 아니다. 가장 큰 약점은 단편화(fragmentation)다.

▲ 토큰화 예금의 상호운용성을 위한 3가지 접근법. ①공유 본토(BIS 아고라, 영국 GBTD), ②오케스트레이션 레이어(스위프트, 파티오르), ③섬 사이의 다리(체인링크, 캔턴 네트워크). 자료: 맥킨지

대부분의 토큰화 예금은 자체적인 허가형 블록체인에서 폐쇄 시스템처럼 작동하며, 은행 간 교환과 진정한 대체가능성(fungibility)이 어렵다. 이더리움이나 솔라나 같은 공개 블록체인에서 자유롭게 — 때로는 익명으로 — 교환되는 스테이블코인과 비교했을 때, 토큰화 예금의 설계는 대체가능성을 제한한다. A은행이 발행한 토큰화 달러와 B은행이 발행한 토큰화 달러가 쉽게 교환되지 않는다면, 블록체인이 극복하려던 바로 그 단편화가 재현된다.

맥킨지는 토큰화 예금의 상호운용성 확보를 위한 3가지 전략적 접근을 제시한다.

① 공유 본토(Shared mainlands) 단일 원장에 상업은행 예금과 도매 중앙은행 화폐를 함께 호스팅. 국제결제은행(BIS)의 프로젝트 아고라(Project Agora), 영국의 GBTD(토큰화 파운드 예금) 이니셔티브가 대표적.

② 오케스트레이션 및 조정 레이어 단일 공유 원장 없이 기존 결제 시스템과 토큰화 자산 간 가치 교환을 촉진. 스위프트(Swift)의 오케스트레이션 레이어, 파티오르(Partior)의 국제 네트워크가 여기에 속함.

③ '섬 사이의 다리(bridges between islands)' 서로 다른 블록체인 간 통신과 동시 교환을 가능케 함. 체인링크(Chainlink)의 스위프트와의 크로스체인 상호운용성 프로토콜, 캔턴 네트워크(Canton Network)가 대표적.

■ 한국이 마주할 새로운 질서 — 5가지 함의

이 글로벌 변화는 한국 디지털자산 시장과 금융권에 직접적인 함의를 갖는다. 본지는 다음 5가지 지점을 한국 시장이 함께 점검해볼 의제로 제시한다.

첫째,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의 좌표를 재설정해야 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지금 막 정책 논의가 시작된 단계다. 그러나 맥킨지 데이터가 보여주듯, 글로벌 자금의 진짜 토큰화는 스테이블코인이 아닌 은행 예금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에 더해, '토큰화 원화 예금(Tokenized KRW Deposit)'에 대한 별도 트랙의 검토가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둘은 기능과 영향이 다르다.

둘째, 한국 시중은행의 토큰화 예금 인프라 준비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J.P.모건 키넥시스가 연 1조 달러 규모로 가동되는 동안, 한국의 4대 시중은행은 어디까지 와 있는가. 일부 컨소시엄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글로벌 G-SIB들의 속도에 비하면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이는 단순한 기술 격차가 아니라, 향후 글로벌 기관 간 결제망에서 한국 은행의 위상과 직결되는 문제다.

셋째, 한국은행 CBDC 실험을 3층 구조 안에서 재해석해야 한다. 한국은행은 도매 CBDC 모의실험을 진행해왔다. 이 실험을 단독 프로젝트가 아니라 '정산 화폐 레이어로서의 CBDC'라는 글로벌 3층 구조 안에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특히 BIS 프로젝트 아고라 같은 글로벌 이니셔티브와의 호환성·연계성이 핵심 검토 대상이 되어야 한다.

넷째, 시민 자유와 금융 인프라 설계의 균형이 필요하다. 본지는 앞서 사설에서 CBDC 설계의 시민 자유 영향을 다룬 바 있다. 토큰화 예금과 CBDC가 동시에 진행되는 환경에서, 효율성과 시민 권리의 균형을 어떻게 입법·설계 단계에 명문화할 것인지가 한국 사회의 중요한 과제다.

다섯째, 디지털자산 업계의 포지셔닝 재설정이 필요하다. 은행이 자신의 자금을 토큰화하는 흐름이 가속화될수록, 디지털자산 업계가 단독으로 점유할 수 있는 영역은 좁아진다. 한국 디지털자산 업계는 ▲은행과 경쟁할 영역 ▲은행과 협력할 영역 ▲은행이 진출하지 않을 틈새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고, 각 영역에 맞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특히 RWA 토큰화 인프라, 크로스체인 브릿지, 컴플라이언스 솔루션, 카스토디 기술 영역에서 협력 가능성이 크다.

■ "스테이블코인은 시작일 뿐, 전체 이야기가 아니다"

맥킨지 보고서는 "스테이블코인은 시작일 뿐, 전체 이야기가 아니다"는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이 한 문장이 한국 디지털자산 정책과 산업 전략에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스테이블코인은 빙산의 일각이며, 그 아래에 토큰화 예금과 CBDC라는 훨씬 더 큰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한국이 스테이블코인 논의에만 매몰되어 있는 동안, 글로벌 통화 인프라의 진짜 재편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정책 당국과 업계가 함께 인식할 필요가 있다.

3층 구조 통화 스택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한국은 이 새로운 질서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답을 내리기에는 이르지만, 질문을 던지기에는 늦었다.

본 기사는 시장 데이터 및 차트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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